8.15는 미국에게는 승전일이고 한국에게는 빛을 되찾은 날이지만 일본에게는 패전의 날이요 국치일이다. 히로히토 천황의 8.15 항복문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성의 기미가 없다. “일찍이 미영 2개국에 선전포고를 한 까닭도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이며,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디 짐의 뜻이 아니다 ...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원자탄을 의미)을 사용하여 번번이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하였으며 그 참해가 미치는 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전을 계속한다면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뿐더러 나아가서는 인류의 문명도 파괴할 것이다.”
이 말은 자신들은 가해자가 아니며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순수한 피해자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당시 전쟁은 수상과 육군상등 6명으로 구성된 전시최고 위원회가 지휘했으며 이 위원회의 모든 결정은 히로히토 천황이 재가했다. 그래서 미국은 포츠담회담에서 일본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할 것과 천황제 폐지를 일본의 항복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영국이 전후 혼란을 이유로 일본천황 처벌을 강력히 반대했다. 이래서 포츠담 선언문에서 일본천황의 전범처벌 조항이 빠지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경우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뭇소리니 그리고 일본의 천황이 최고 전범인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천황이 전범인 증거는 여러 개다.
패전 6개월 전인 1945년 2월 황실 왕자 중의 한사람인 후미마로 고노에는 전황 전반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히로히토 천황에게 제출하면서 “이대로 가면 패전보다 민란이 일어나 황실의 존재가 위태롭다”고 경고하자 히로히토는 “평화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며 한번 더 군사적인 대결을 해본 후에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대장상인 히사노리 후지타의 일기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전후 전범재판에서 밝혀진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히로히토는 전범 1호다.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이 그를 처벌하고 차제에 일본의 천황제를 폐지했더라면 혼란은 있었겠지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래 다시 태어나는 역사적인 탈바꿈을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왕정을 폐지하고 민주국가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일본의 우경화는 천황제 때문이다. 천황제가 존재하는 한 일본의 극우세력이 활기를 띠울 것이며 정치인들은 이들의 표를 의식해 계속 우경화 정책을 택할 것이다.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보면 일본의 천황숭배와 우경화가 어느 정도인지 직감할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인들에게 ‘민족의 영광스런 역사’를 상기시키는 기억의 장치이다. 전범을 영웅으로 모시고 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문제가 되는 것은 메르켈 독일총리 히틀러에게 참배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군사 대국화와 연결되어 있고 아베 정부는 이를 통해 위기의식을 조장하면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해낼 수 있는 정체성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일본이 쩨쩨하고 속 좁은 나라라는 것을 내가 느낀 것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를 취재 갔을 때였다. 독일 고교생들이 교사 인솔 하에 수학여행을 와 자신들의 선조가 얼마나 잔학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박물관 안내자로부터 설명 듣고 있지 않은가. 독일정부는 고교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인식시키기 위해 아우슈비츠 수용소 견학을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왜곡을 조장하는 일본정부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일본이 정말 속 좁아 보였다.
일본의 우경화와 천황제도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본이 천황제도를 유지하는 한 우경화 바람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며 역사왜곡 작업도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천황제 존속이 문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