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인 저를 배제하려는 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도 없습니다.”
93세인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TV 연속극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연상케 한다. 지난 며칠 동안 보여준 롯데가의 싸움은 하나의 드라마였다. 형제 간의 분쟁이 아버지와 아들 간의 싸움으로 번지고 이어 창업주와 경영진과의 대립으로 확대되고 있다. 어제 40여명의 롯데 사장단은 기자회견에서 둘째 아들 신동빈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롯데의 분쟁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행복은 반드시 소유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부자가 될수록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한국 재벌들 중 형제 간에 싸우지 않는 집안이 거의 없다. 롯데의 신동주와 신동빈, 삼성의 이맹희와 이건희. 두산의 박용성과 박용오, 효성의 조현준과 조현문 등등 현대, 금호, 한화, 대림, 코오롱 등 40개의 재벌그룹 중 18개 그룹이 가족싸움에 얽혀있다(재벌 닷컴 통계). 형제간 사이좋기로 이름난 두산그룹에서는 마침내 박용오 회장이 목을 매 자살하는 극한적인 상황에까지 이른다.
지나친 소유는 소유자를 노예로 만든다. 니체의 말이다. 돈의 노예가 되면 돼지가 하늘을 못 보는 현상이 일어난다. 재벌만 형제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100억대 이상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재산을 둘러싸고 가족끼리 싸움질이다. 사람이 돈을 컨트롤 해야 하는데 돈이 사람을 컨트롤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인격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배가 부른데도 계속 자신의 배를 더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부자인데도 옆집이 더 부자이기 때문에 궁핍을 느낀다. 궁핍한 것이 아니라 궁핍성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롯데가의 가족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갖고 있는데도 만족할 줄 모르고 상대적으로 궁핍성을 느껴 더 가지려고 아우성이다. 한쪽에서는 가난과 싸우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돈과 싸우고 있으니 국민들이 보기에도 역겹다. ‘재벌은 형제가 원수’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케이스다. 아들과 아버지가 싸우다니 - 이건 재벌이기에 앞서 콩가루 집안이다. 아버지가 자식이름을 ‘히로유키’니 ‘아키오’니 해가며 일본말로 부르고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도 일본말로 한다. 한국인인데도 말이다. 롯데는 국민감정을 건드렸기 때문에 앞으로 롯데 불매운동에 시달릴 것이다.
재벌 창업주의 책임은 후계자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데까지 연장된다. 돈만 벌었다고 성공한 것이 아니다. 드라마의 마지막인 3막에서 후계자 문제를 잘 해결하고 퇴장해야 재벌다운 재벌로 존경 받는다. 존경받지 못하는 재벌은 향기 없는 장미다. 생화가 아니라 가화다. 롯데 사람들은 LG그룹에 가서 연수를 좀 해야 한다. 구자경 회장은 70세가 되자마자 은퇴를 선언하고 아들 구본무에게 회장직을 넘겼고 LS그룹의 구자홍 회장은 친형제가 아닌 사촌동생 구자열에게 경영권 승계를 맡겼다.
절대적인 1인 체제에 의지해오던 롯데그룹은 승계시기를 앞당기지 못해 앞으로 누가 경영권을 잡든 간에 결국 ‘신격호의 실패’라는 타이틀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형제갈등도 아버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1인 체제의 비극은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는 데에 있다. 그런 체제에서 어느 날 갑자기 마음대로 안될 때 먹느냐 먹히느냐의 승자독식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싸움은 일반적으로 죽기살기식의 이전투구이기 때문에 양쪽 다 패자로 끝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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