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커뮤니티 비즈니스 거물 - 프랭크 자오
40년 전 5월의 어느 일요일, 당시 27세의 베트남 난민 프랭크 자오는 위티어의 작은 아파트에 입주했다. 바로 일주일 전 그는 아내와 함께 사이공에서 퇴각하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 미군 수송기를 타고 간신히 베트남을 빠져 나왔다.
친절한 그의 미국 스폰서는 나라에서 매달 생활비를 줄 것이니 6개월 정도는 일하지 말고 미국생활 적응에만 힘쓰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영어를 했던 그는 당장 다음날 아침 근처 도넛가게에 가서 신문을 구입, 구인광고를 훑었다. 첫 번째 전화에서 바로 얻은 잡이 진공청소기 세일즈. 미국에서 곧바로 일을 시작한 이유는 남에게 의지하는 것을 원치 않는 성격 때문이었다.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아시안 가든몰의 주인이며 오늘날 베트남 커뮤니티의 대표적 비즈니스 리더로 성장한 프랭크 자오. 그의 성공에는 이 같은 자존심과 부지런한 성격이 큰 몫을 했다.
그가 대표로 있는 브리지크릭 그룹은 지난 40년간 시가 4억달러에 달하는 주거용·상업용 건축물을 세웠으며 웨스트민스터를 비롯, 인근 도시 50에이커 땅에 있는 그의 소유 건물에는 1,200개의 상점들이 입주해 있다.
1987년에 세우진 아시안 가든몰은 리틀 사이공의 대표 건물. 200개의 보석상을 비롯 300개의 업소들이 들어차 있다.
매년 음력설이면 그곳에 정치인과 유명 인사들을 초청, 붉고 황금빛 나는 봉투에 10달러 지폐를 넣어 ‘행운의 선물’을 하는 자오도 어린 시절은 매우 어려웠다.
북베트남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가정의 11남매 중 7째로 태어나 북베트남이 공산군에 넘어간 1954년 남쪽으로 이주했고 14세에는 가출하여 홀로 신문배달 등을 하며 연명했다. 그 와중에도 베트남-미 협회에서 제공하는 영어 강의를 들었고 미 해병대 통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미국에 와서 처음 얻은 진공청소기 세일즈 일은 3주 후 그만두고 밤에 경비원으로 일하며 낮에는 파트타임 자동차 기계를 가르치는 한편으로 로컬 칼리지에서 부동산·건설 공부를 했다.
가든그로브로 터전을 옮긴 그는 부동산 세일즈맨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 3년 후 10만달러를 모았다. 그러나 직접 건설하는 것이 가장 빠른 부의 축적수단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그때부터 투자자들과 파트너로 건축을 시작했다.
물론 순탄치만은 않았다. 웨스트민스터 주민들이 베트남 이민자들에게 비즈니스 라이선스 발급을 거부하도록 시에 압력을 넣기도 했고 베트남 업소에 총탄이 날아들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음식업 등으로 아시아에 진출한 그가 최근 열정을 쏟는 일은 베트남 호치민시에 세워질 풀브라이트 유니버시티 베트남 설립. 그는 현재 UC 어바인 재단 이사로도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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