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부조리에 “하나님은 뭐하시나” 회의... 할리웃서 시무하던 목사 ‘신과 조건부 결별’
▶ 반기독교·무신론 단체들 앞다퉈 ‘귀빈’ 대접... 본인은 “창조론-진화론의 경계에 있는 상태”
라이언 벤과 그의 딸이 무신론자들을 위해 마술사 펜 줄리엣이 라스베가스에서 개최한 심야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 내년 1월 선택 앞두고 주목
‘죄악의 도시’라는 라스베가스의 컨벤션 센터 홀. 어두컴컴한 실내조명 속에 스트리퍼가 무대 위에서 요란스런 엉덩이춤을 추고 있다. 홀 안에는 식인문화(카니발리즘)를 찬미하는 노래가 귀가 먹먹하도록 쩡쩡 울려 퍼진다. 객석을 꽉 메운 청중을 향해 한 남성이“신은 죽었다”고 소리 높여 외친다.‘음란한 세대’의 악마주의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 모임의 호스트는 미국의 유명 마술사 펜 줄리엣. 그는 무신론자와 회의론자들의 대변인 겸 대부를 자처하는‘카인의 후예’다.
펜의 편향성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죄악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반 기독교적 향연은 새로울 게 없는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날의 모임은 조금 다르다. 딸과 함께 객석에 앉아 있는 40대 중년 남성의 꽉 찬 존재감으로 회의장의 열기는 여느 때보다 뜨겁다.
문제의 남성은 라이언 벨. 올해 43세로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잘 나가던 목사다.
벤은 몇 달 전 ‘하나님과의 시험적 결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이후 반기독교 진영으로부터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고 있다. 라스베가스 모임에 초청을 받은 것도 그가 무신론자들의 ‘특별관리 대상’이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할리웃 안식교회의 스타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그는 지난해 초 17년간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어 올해 3월 교단 지도부와의 신학적 견해 차를 이유로 목사직을 내던졌다.
그의 삶을 지탱해 온 두 축이었던 가정과 교회를 한꺼번에 허물어버린 셈이다. 기독교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시험에 걸려 넘어진 전형적 케이스에 해당한다.
안식교회는 기독교의 여러 종파 가운데서도 보수성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그는 안식교의 본산인 남가주 로마린다에서 성장한 예수재림교회의 대물림 모태 신앙인으로 풀러 신학대학을 다닐 때부터 극단적인 보수성향으로 이름을 날렸던 ‘꼴통’이었다.
풀러 신학대학에서 그를 직접 가르친 영문과 교수 낸시 리코트는 “한 번은 학생들에게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글을 읽으라는 과제를 주었는데 유독 벨만이 이를 거부했다”고 소개했다. 볼테르의 글이 “영혼을 더럽힌다”는 것이 그가 밝힌 거부의 이유였다.
벨은 청소년 시절에도 티가 나는 ‘범생이’었다. 친구들의 끈질긴 강권에도 불구하고 술을 입에 대지 않았고, 담배를 피우지도, 욕을 하지도 않았다.
안식교의 전통에 따라 채식주의자로 성장한 그는 멘토였던 할아버지의 조기교육 덕분에 일찌감치 창조론을 우주생성의 원리로 받아들였다.
물론 고교 시절 비틀즈와, 밥 딜런, U2 등에 심취해 잠시 ‘죄스런 쾌락’을 맛보기도 했지만 신학대학에 진학하면서 ‘세상의 노래’를 자신의 삶속에서 철저히 제해버릴 정도로 심지가 단단한 안식교인이었다.
풀러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필라델피아 근교의 안식교 교회에 부임했다.
그곳에서 벤 목사는 ‘믿음의 온도차’에 상관없이 교인들 사이에 신앙적 일탈행위가 다반사로 자행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결국 그는 공기를 쥐는 것 같은 개인의 구원에 매달리기보다 대승적 차원에서 인간의 집단적 탐욕이 만들어낸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병폐를 분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나름의 사역방향을 굳히게 된다. 이처럼 개인의 영혼 구원에서 사회정의로 무게 추를 이동시킴에 따라 그의 전쟁터는 ‘영의 세계’에서 ‘육의 세계’로 바뀌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사역을 마치고 할리웃 안식교회 담임목사로 임명됐을 때 그에게는 ‘세속주의 성직자’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그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월스트릿을 점령하라’ 캠페인에 적극 동참했고, ‘고리대금업’으로 비난받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대출정책을 규탄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사회악을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고, 목청을 높일수록,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회의는 커져만 갔다. 세상의 어이없는 불공평과 부조리를 접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우주의 질서’를 설명하는 과학과 ‘생명의 매뉴얼’이라는 성경의 화해를 시도하면 할수록, 전혀 맞지 않는 조각들을 가지고 퍼즐을 맞추려들고 있다는 허망한 느낌이 커졌다.
지난 4월 한국에서 세월호가 침몰, 대부분이 어린 학생인 304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 후 그의 회의론은 더욱 견고해졌다. 여호와가 우주의 삼라만상을 운행한다면 그는 대단히 무능한 관리자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태하기 이를 때 없는 무용한 존재라는 생각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이혼과 목사직 사직, 풀러대학 강사직 사퇴들은 모두 이 무렵에 이루어졌다.
믿음과 생계수단을 모두 잃어버린 그는 초점을 잃고 표류하는 자신의 삶을 다잡아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지만,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그는 하나님과의 조건부 결별을 선언하게 된다. 지난 40여년간 걸어온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 ‘가지 않은 길’로 갈 데까지 가본 후 내년 초 두 갈래 길 가운데 하나를 ‘마이웨이’로 정하겠다는 얘기다.
자신의 블로그에 이 같은 결심을 밝히면서 벤은 일약 유명 인사가 됐다.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마다 수 천 개의 댓글이 따라붙었고, 수만명의 팔로어들이 모여들었다. CNN과 NPR, BBC 등 대중매체들도 다투어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천로역정’에 나선 그는 과학서적을 탐독하고, 무신론자들과 어울려 밤샘 토론을 벌이는 등 ‘창조주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사하기 시작했다. 반기독교 단체들의 토론회에 그는 단골 패널로 참석했다.
무신론자와 회의론자들은 그를 융숭하게 대접해 주었다. 그의 생활비를 보조하는 온라인 기금이 개설됐고, 일자리도 주어졌다. 그들은 벤이 ‘신이 없는 세상’에 온전히 정착하기를 원했다.
기독교 진영은 그의 귀환을 원했다. 풀러대학 은사인 낸시 리코트는 그가 기독교로 회귀하기를 원한다면서 “개인적으로 벤이 안식교단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그녀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벤의 신앙회복을 기원하는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벤은 2015년 1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최종 선택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신 없는 세상에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기운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벤은 펜 줄리엣이 주최한 라스베가스의 무신론자 모임에 역겨움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모임이 시작된 지 불과 10여분만에 그는 딸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행사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벤은 이제 더 이상 창조론에 집착하지 않지만 “아름답고 다양하며 오묘한 삼라만상을 분자와 원자의 결합체로 설명하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무신론과 유신론을 비롯, 인생을 구성하는 ‘동전의 양면’을 모두 보았다고 자부하는 그는 “아직도 나는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제약하는 경계선의 역할을 한다는 견해도 내비쳤다. .
벤이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릴지 불투명하지만, 어느 쪽이 됐건 그의 결정은 개인적인 선택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가 ‘하늘의 길’과 ‘세상의 길’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믿음이 없는 세대’의 황량한 풍속화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