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미(용커스 거주)
요 며칠 황당한 사건 하나로 한국 국내뿐만 아니라 한인사회마저 소란스러운 것 같다. 심지어 세계유수의 매스컴에서조차 제 멋대로 제목을 달아 아주 우스꽝스럽고 이해할 수 없다는 만평을 쏟아내고 있다. 많이 부끄럽다.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잇는 국적항공사의 기내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뉴스를 접한 대부분은 부사장 직함의 그 여성과 기장의 판단력 등 항공사 측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오래 전 그 항공사에서 일등석 담당 승무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 이 일은 더욱 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심각한 사건이다. 담당 승무원이 매뉴얼을 정확히 숙지하고 있었다면 세계적인 일등 항공사 그것도 일등석에서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보통 VIP승객이 아닌 자사 임원이 탑승하였으므로 비행 전 승무원브리핑에서 평소보다 조금은 더 강도 높은 긴장을 주문 받았을 터인데 말이다. 이 말은 사소한 실수라도 근무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나 일등석을 담당하는 승무원의 자리는 몇 달씩 일등석 담당 식음료교육인 갤리교육을 받은 복잡한 매뉴얼에 익숙한 경험이 가진 시니어그룹 만이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다. 그러니 이 사건의 발단은 우선 승무원에게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미리 물어보지 않고 땅콩을 봉지 째 건넸다고 다른 승객은 안중에도 없이 소리치고 활주로로 나아가던 비행기를 다시 게이트로 돌려 사무장을 내리게까지 한 부사장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오너는 법 위에 있다는 행동에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비상시 안전수칙을 묻는데 대답을 못하거나 승객에게 불친절한 대응으로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것이 결과적으로 비행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니까 엄중한 질책을 할 수는 있지만, 하이재킹의 의심이 없는 상황인 이상은 일단 도착지에 가서 시말서를 쓰게 한다거나 서비스 감찰위원회에 회부하여 적절한 조치를 받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오래 전, 막 갤리교육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되어 일등석 첫 근무를 담당했을 때가 생각난다.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해서 오븐에 손을 데기도 하면서 하얀 린넨 위에 과일즙 한 방울이라도 튈까 노심초사했던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친다. 아래위층을 뛰다시피 잰 걸음으로 오르내리며 포도송이 한 알도 숫자를 맞추어야 했던 그 때의 기억은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선명하기만 하다.
당시 모 대기업총수였던 어떤 VIP는 탑승과 동시에 바닥에 모포를 깔고 도착지까지 잠만 자던 분이 있었다. 기내식도 들지 않고 자기만 하는 것이 의아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 만큼의 긴장과 조바심을 덜어준 셈이니 내심 고맙기까지 했다.
빤히 쳐다보는 승객들 앞에서 산소마스크와 구명동의를 입어 보이는 시범을 할 때는 괜스레 얼굴을 붉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는 승객이나 같은 공간 안에서 부여된 업무에 늘 긴장하는 승무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기내안전일 것이다.
아무 사고 없이 예정된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치며 환호하던 승객들을 바라보며 온갖 피로가 사라지며 감사해하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세모가 바로 코앞인데 어이없는 사건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이 불편하다.
자그마한 일상의 일에서부터 조금만 더 상대의 입장을 배려한다면 훨씬 따뜻한 연말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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