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추수감사절이다. 우리 주변에는 추수 외에도 감사할 일들이 많이 있으나 못 느끼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년에 서울을 잠시 방문 했을 때 도시전체를 감싸 버린 황사의 짙은 먼지안개에 가슴이 답답했다. 속수무책의 암담함 마음으로 거리를 걸었을 뿐 해결할 길이 없었다. 다시 LA로 돌아와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파란 하늘 아래 나뭇가지 틈새로 뚫고 들어오는 눈부신 빛들의 아름다움이 꽃나무의 빛깔 잔치와 어우러지면서 자연의 향기로, 싱그러운 바람으로 다가왔다. 새삼 우리 삶속에 방치되어 있는 자연에 감사를 드리는 순간이었다.
자연의 풍광이 원시 그대로 보존된 멕시코 오지의 해변가 마을에 중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4일간 텐트를 치고 머문 적이 있었다. 같은 또래의 원주민 아이들과 아들은 쉽게 어울렸다. 그곳 아이들은 롤리팝 캔디 하나에도 고마워했다. 헝클어진 머리, 찢어진 운동화, 남루한 옷차림, 그리고 처참한 주거 환경속의 그들이었지만 동심은 아무 격의 없이 어우러졌다. 조개껍질로 놀이를 하다가, 조개와 게를 잡고, 모래로 집을 짓기도 하며 아이들은 무한한 공간과 시간이 펼쳐진 바닷가에서 소리치고 물새를 좇아 뛰어다니며 천방지축 뛰어 놀았다.
4일후 아쉬움과 섭섭함 속에서 그들과 작별하고 돌아오는 어두운 차안에서 아들은 자기의 공부방을 이들과 같이 나누어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물었다. “너와 그들의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머뭇거리며 말을 못하는 아들에게 나의 자문자답이 이어졌다. “이유는 딱 하나다. 너의 노력이나 너의 잘난 것 때문이 아니야. 단지 그들은 멕시코 오지에서 태어났고 너는 미국에서 태어난 것 뿐…이런 은혜를 거저 받았으니 깊은 감사를 해야지….”어둠 속을 달리는 차 안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아들이 이때 느낀 감사의 마음이 일생동안 가슴에 남았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이런 감사의 마음은 평균 2-3개월 지속되고 그 후엔 서서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헐벗은 그곳의 원주민들처럼 먹지도 씻지도 못한 채, 허름한 옷을 입고 쓰러진 사람을 누가 집으로 데려 갔다고 한다. 따뜻한 밥을 한 그릇 주니, “아, 이게 밥이라는 겁니까?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그는 그 밥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한 없이 평화롭게 보였다고 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찾아준 평안이다. 가난하고 비천하지만 감사할 줄 아는 영혼과 자신들만의 화려한 성에 앉아 천국과 극락의 복을 다 달라고 청하는 사람, 당신이 신이라면 누구의 손을 잡을 것인가?히말라야 등산하던 어느 등산가는 동반하여 짐을 지고 쫓아오는 노새를 보고 울었다고 한다. 묵묵히 터벅터벅 산등성이를 오르는 노새의 모습 속에서 어머님의 얼굴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왜 평소에는 울지 못했을까? 왜 일상생활에서는 감사를 표현하지 못했을까? 내리사랑이라는 명분으로, 모두 한 길을 가는 우리의 목마른 삶 속에서 감사를 잊고 있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오랜 세월 내과 주치의로 일하며 난 환자들이 생명연장의 인간본능 속에서 좀 더 높이, 좀 더 오래…하는 아쉬움 속에 마지막 순간을 맞는 것을 가끔 본다. 광활한 공간과 시간의 우주에서 생물이 살기에 제일 적절한 풍요로운 지구를 택해 일정 기간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특혜를 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릴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엔 평안이 오고 아쉬움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감사하는 마음의 선물일 것이다.
가을이다. 욕망의 계절들을 반성하며 순결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정신적 재고인 감사의 마음이 충만하게 채워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일상의 큰 에너지가 된다는 소중한 진리를 되새길 수 있는 이번 추수감사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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