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타운 관통 놀만디 노선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건설계획
▶ 건설비 급등으로 무산 밝혀져
빨간색이 당시 계획됐다가 이후 실제 건설이 이뤄지지 않은 프리웨이들이다.
남가주 지역의 프리웨이 노선이 지금보다 2배 이상 많았다면 어떨까. 매일 극심한 프리웨이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는 운전자들의 귀가 번쩍 트일 만한 이같은 시나리오가 실제 LA에서 추진됐었다는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29일 LA타임스는 UCLA 교통연구소 디렉터인 브라이언 테일러 교수의 보고서를 인용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LA 지역의 교외 팽창이 이뤄지면서 당시 교통 당국이 남가주 전역에 프리웨이를 그물망 같이 건설하려는 계획을 수립했었으나 이 중 상당수가 무산돼 실제 건설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1940년대 말 당시 도시계획 당국은 남가주 전역을 촘촘히 커버하는 프리웨이 건설 계획도를 만들고 이에 따라 프리웨이를 건설해 나갔지만 이 중 여러 개의 프리웨이들이 자금 부족과 주민 반대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렇게 건설이 계획됐다가 무산된 LA 지역 프리웨이들은 대부분 현재 가장 교통이 혼잡한 지역을 지나도록 당시 설계됐었는데, 이 중에는 샌타모니카 블러버드를 따라 현재의 101번 프리웨이와 405번 프리웨이를 잇는 노선과 라시에네가 블러버드를 따라 건설되는 노선, 놀만디 애비뉴를 따라 현재의 한인타운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노선, 현재의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를 따라 건설되는 노선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1950년대 등 초창기에는 비용과 시간 등 면에서 프리웨이를 건설하기가 훨씬 용이해서, 1947년과 1953년 캘리포니아주의 개솔린 세금 인상으로 건설자금이 풍부했고, 토지수용 절차도 훨씬 간단해 프리웨이 건설이 촉진됐었으나 이후 건설비용이 급등하면서 자금이 바닥나고 수용 절차도 복잡해진 데다 베벌리힐스나 패사디나 등 건설 예정지역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 프리웨이들은 결국 건설이 무산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프리웨이 건설 예정지역의 부동산들을 대상으로 한 투기현상도 발생하면서 계획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LA 한인타운 지역의 101번 프리웨이와 버몬트 애비뉴가 만나는 지점이 현재도 매우 널찍한 상태로 남아 있는데 이는 이곳을 당초 101번과 베벌리힐스 프리웨이를 연결하는 인터체인지로 건설하기 위해 부지를 수용했었다가 이것이 무산되면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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