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세월호
세월호 참사 후 자괴의 소리가 쏟아졌다. “어떻게 한국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터질 수 있나?” “한국이 선진국 될 날은 멀었다” “인명이 귀한 줄 모르는 야만국가다”라는 등의 탄식이었다. 꽃다운 고교생 290여명이 침몰하는 배에 갇혀 일시에 숨진 후에도 건물이 무너지고 요양병원에 불이 나 수십명이 떼죽음 당했다. 모두 후진국형 인재 사고였다.
두달 전 칼럼(4월19일자)에서 나도 구태의연한 한국을 비아냥했다. “최첨단 IT 선진국이지만 최악의 후진국형 인재사고가 터지는 한국은 아직도 과도기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깎아내렸다. 그런데, 그렇게 비아냥할 처지가 전혀 못 된다. 미국에선 세월호 같은 미친 사건이 매일 터진다. 인명이 귀한 줄을 모른다는 점에서 미국은 세계최악의 미개국이다.
밤중에 자기 집 차고에 들어온 이웃 청년을 다짜고짜 사살한다. 차선에 끼어든다며 격분한 운전자가 상대방 차에 총탄세례를 퍼붓는다. 방안에 있던 사람이 밖에서 벽을 뚫고 들어온 총탄에 맞아 죽는다. 밤낮없이 갱단들이 총격전을 벌이고 무고한 행인이 그 유탄에 맞아 횡사한다. 경찰관이 말을 안 듣는다며 귀머거리 인디언 무숙자를 대로상에서 사살한다.
미 전국에서 하루 평균 32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 그중 8명은 20세 미만의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총격을 받고 응급실에 실려와 치료받는 사람이 140명에 이른다. 매일 평균 51명이 총으로 자살하고 45명은 오발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다. 미국의 총기살인 비율은 인구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다른 22개 국가의 총기살인 비율을 합친 것보다도 20배나 높다.
사람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는 인명경시풍조 속에 총격범이 툭하면 학교 등 공공장소에 침입해 자동소총을 갈겨댄다. 지난 2012년 12월 1학년 꼬마 20명과 교사 6명이 피살된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 훅 초등학교 학살사건 이후 1년 반가량 기간에 전국 각급 학교에서 총격사건이 모두 74 차례나 발생했다. 평균적으로 매주 1.37건씩 일어난 꼴이다.
그 중 하나가 지난 5일 시애틀 퍼시픽대학(SPU)에서 터졌다. 그날 숨진 한인학생 폴 이(19)군은 아마도 학교 총격사건의 첫 한인 희생자일 듯하다. 이군의 비보는 어쩔 수없이 7년전 버지니아 텍 대학의 조승희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쌍 권총을 들고 학교에 침입해 32명을 살해하고 자살한 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캠퍼스 총격 학살범으로 기록됐다.
폴 이군이 숨진 지 닷새만인 지난 10일 그의 고향인 오리건에서 또 고교생 한명이 학교총격사건으로 숨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드디어 뿔났다. 그는 선진국들 중 유일하게 미국에서만 대형 총격사건이 일상처럼 돼버린 것이 부끄럽다며 미국인들의 자기성찰과 총기규제 강화를 지지하는 여론의 뒷받침이 없는 한 총격사건은 종식될 수 없다고 개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샌디 훅 사건 후 총기구입자 배경조사 의무화 법안을 연방의회에 상정했으나 상원에서 부결됐다. 물론 전국총기협회(NRA)의 강력한 로비입김 때문이다. NRA는 개인의 무기 소지가 연방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일 뿐 아니라 총기사건의 근본문제는 총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오용, 남용하는 정신질환자나 마약 복용자들이라고 둘러댄다.
반공이 한때 한국의 국시였듯이 미국의 국시는 ‘안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통수단을 비롯해 생필품, 주거시설, 식의약품, 환경오염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정한 안전기준은 세계의 표본이 된다. 공항의 승객검색은 짜증이 날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시행하면서 정작 테러범들의 손에 들어갈 위험이 있는 총기는 왜 근본적으로 규제 못하는지 답답하다.
미국인들은 1억9,200여만정, 한국인들은 18만7,000여정의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 미국에선 세월호 희생자의 40배 이상인 1만2,000여명이 매년 총기사고로 죽는다. ‘선진국형 사건’이 아니라 ‘미국판 세월호’다. 오늘도 평균 32명이 미국판 세월호의 희생물이 되겠지만 한국인이 총 맞아 죽을 확률은 0%에 가깝다(군부대 제외). 미국은 까마득한 후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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