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노르웨이 릴리함메르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의 최대 화제는 미국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낸시 케리건이었다. 그녀는 올림픽 선발대회에서 경쟁자인 토냐 하딩의 전 남편이 꾸민 음모에 의해 쇠파이프로 다리를 얻어맞고 병원에 실려 갔다. 그녀가 울면서 “Why Me!”라고 소리친 가슴 아픈 장면은 미국 스포츠사에 영원히 남는 교훈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테러를 당해 피겨 스케이팅을 거의 포기할 줄 알았던 그녀가 7주간의 재활훈련으로 기력을 되찾아 릴리함메르 올림픽에 출전 했을 때 가진 미국민들의 기대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낸시 케리건은 이미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가지고 있어 올림픽에서 경쟁상대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었다. 그런데 케리건도 김연아와 마찬가지로 쇼트 경기에서 1등으로 달리다가 2차 경기인 롱 프로그램서 점프를 주 무기로 내세운 14세의 옥사나 바율(우크라이나)에게 금메달을 빼앗겼다. 누가 봐도 예술성에서는 낸시 케리건이 압도했기 때문에 금메달이었는 줄 알았는데 은메달에 머물자 미국민들의 심판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미셸 콴도 마찬가지다. 콴은 1998년 동계올림픽(일본 나가노)에서 쇼트 프로에서 9명의 심사위원 중 8명으로부터 만점을 받았으나 롱 프로에서 15세의 타라 리핀스키(미국)의 공격적인 점프와 스핀에 심사위원들의 점수가 쏠리는 바람에 은메달에 머물렀다.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심사위의 편견은 이름나 있다.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때도 복식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식 판정이 말썽이 되어 러시아 팀에 표를 던진 프랑스 여자 심사위원이 압력에 의해 그렇게 됐다면서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이를 계기로 피겨스케이팅 채점제도가 완전히 바뀌었는데도 심사위의 이상한 판정은 여전하다.
심사위원들의 ‘이상한 판정’ 내용을 분석해보면 첫째 나이어린 스케이터를 선호하고, 둘째 예술성보다 점프의 기술을 더 중시하고, 셋째 공격적이고 박력 있는 프로그램을 들고 나온 선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김연아가 심사위의 이상한 체질을 고려했더라면 좀 더 공격적인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어야 했다.
또 하나의 불문율은 유명해지고 부자가 된 피겨 스케이터에게는 점수를 박하게 준다는 사실이다. 낸시 케리건은 테러를 당한 후 미전국에서 후원금이 쏟아져 970만 달러가 모였으며 베라 왕이 디자인한 1만3,000달러짜리 의상을 입고 출전 했었다. 반면 옥사나 바율은 부모도 없이 코치 집에서 하숙하는 가난한 소녀였다. 미셸 콴도 연거푸 월드 챔피언이 되는 바람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김연아는 포브스 지에 의하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후 연수입이 970만 달러로 뛰어올라 세계 최고소득 스포츠인 10명 명단에 올라있다.
심사위원들은 헝그리 정신이 가득한 젊은 스케이터를 좋아한다.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인 크리스티 야마구찌(미국)는 “심사위원들도 인간이라 감정적으로 판정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선수를 둘러싸고 떠도는 소문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나에 대한 소문에 대단히 신경을 썼다”고 말한 적이 있다. 출세하고 돈 많이 버는 스케이터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들은 새 얼굴을 선호한다. 이같은 심사위원들의 체질 속에서 두 번 연달아 금메달을 획득한다는 것은 사실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다. 피겨 스케이팅은 기록경기가 아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판정에 달려있다. 그래서 억울한 판정이 내려진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김연아가 금메달 놓친 것 너무 흥분할 일이 아니다. 피겨 스케이팅의 세계가 원래 공정하지 못한 체질을 갖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너무 흥분하면 코리언의 이미지가 오히려 우습게 비칠 가능성이 있다. 김연아 후폭풍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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