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발언
“요즘 젊은이들이 생산직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처럼 생산직에 종사하는 기술자가 미술사 학위를 지닌 대학 졸업자보다 더 돈을 많이 벌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말 위스콘신 주에 위치한 GE공장을 둘러보는 현장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다.
미국의 생산업을 부활시키고, 근로자들을 위로하는 말로써는 훌륭한 발언이다. 그런데 돈 안 되는 여러 전공 가운데 왜 하필이면 미술사를 예로 들었을까. 만일 미술사 대신 철학을 언급했다면 “지성적이지 못하다”라는 비평을 받고, 여성학을 예로 들었다면 페미니스트로 부터 한방 먹었을 것이다. 연설문을 작성하기 전, 청중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큰 논란을 일으키지 않을 전공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을 것이다. 해서, 미술사 언급은 전략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우선 GE 공장에서 연설 당시 오바마의 청중은 주로 기술 생산직에 종사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미국 전체 대학생의 0.2%만이 미술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전공자 대부분은 여학생이다.
그렇다면, 돈 안 되는 전공을 하느라 돈과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 기술을 배우는 쪽이 낫다라는 오바마의 신념을 그대로 따른다면 쉽게 취업이 가능할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기공ㆍ플러머ㆍ목공 등 수십년 경험이 있는 기술자도 일자리 얻기가 힘든 게 요즘이다. 게다가 대학 졸업자 가운데 무직인 학생의 전공은 인문학이 아니라 오히려 비즈니스,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등 실용적인 전공이다. 실제로 STEM 분야에서 석유관련 화공학 전공을 제외한 나머지, 즉 전기공학ㆍ기계공학 같은 전공자의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을 뿐 일자리 얻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주기적으로 기복을 타는 경기, 가속되는 테크놀로지, 돌변하는 수요와 공급이 주도하는 세상에서는 어떤 전공을 했나 보다 언제 졸업했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나아가 전공에 상관없이 기업과 사회는 소통능력ㆍ리더십ㆍ팀워크 기술 등의 기본적인 소프트 스킬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무엇엔가 색다른 인재를 항상 환영한다. 미술사에 나타난 굵직굵직한 화가ㆍ조각가ㆍ건축가의 공통점이 바로 색다름이다. 근본적으로 예술은 창작활동이요, 창작 활동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위험부담을 각오하는 것이다. 위험부담을 주저주저 한다면 창의적이고 색다른 작품을 만들 수 없다. 또한 그 색다름의 출발점은 이미 존재하는 양식에 대한 저항과 반항에 있다. 바로 그 저항과 반항이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것을 듣고 보며, 다르게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색다른 인간을 만드는 힘을 지닌 예술은“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요, 인간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도 아니요, 에너지 분산물도 아니고, 쾌락 즐거움은 더더욱 아니다.”
이렇게 역설한 톨스토이는 예술을 인간과 인간을 서로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보았다. 예술은 수퍼볼 경기에서 우승한 시애틀의 풋볼 팀 시혹스의 역할과 비슷하다. 즉 시애틀 다운타운에 몰린 70만 인파를 승리의 기쁨이라는 한가지 느낌으로 서로 연결한 것이다.
이에 비해 오바마의 발언은 인간과 인간을 엮어주는 매개체라기 보다 분열과 두려움을 낳는 촉매 작용을 했다. 마치 미술사 전공을 하면 직장도 얻지 못하는 변변치 못한 인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라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이유로 한쪽을 추켜세우며 다른 한쪽을 폄하하는 것은 지도자로서의 무책임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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