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 미(Why me)?”
한인사회 정초 분위기가 연말처럼 스산하다. 갑오년에 건강도, 사업도 청마처럼 역동적이길 바라는 한인들이 서로 덕담을 나누다가 낙담했다. 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의 느닷없는 은퇴발표가 날아든 탓이다. 그는 진작부터 5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혀온 터여서 은퇴 자체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조기은퇴 결심의 배경이 알츠하이머라는 게 충격적이었다.
아마 본인도 다른 난치병 환자들처럼 “Why me?”(왜 하필 나인가?)라며 절규했을 터이다. 그는 미국은 물론 해외를 통틀어 대표적 한인1세 정치인으로 꼽힌다. 고아거지였고 미군부대 하우스보이였던 그가 18세 때 미군장교 가정에 입양돼 박사가 됐고 대학교수가 됐다. 주 하원의원을 거쳐 주상원 4선 의원과 상원 임시부의장을 역임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신의원은 올해 79세다. 한국인 남자 평균수명을 1년 넘겼지만 ‘망령’들만큼 꼬부랑 할아버지가 아니다. 머킬티오 자택에서 올림피아 의사당까지 운전하고 다니며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한 의정활동을 벌인다. 한인사회 대소행사에 꼬박꼬박 얼굴을 내밀고 한국도 수시로 왕래한다. 병들 틈이 없이 바쁜 그 저명인사가 치매에 걸렸다는 말이 곧이들리지 않는다.
하긴, 신의원보다 더 바쁘고 더 저명한 정치인들도 치매에 걸렸다. 구소련 붕괴와 냉전종식을 주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40대)은 퇴임 6년 만에 치매진단을 받고 10년간 소리 소문 없이 살다가 2004년 93세로 별세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32대), 소련 독재자 조셉 스탈린,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과 해롤드 윌슨도 치매환자였다.
이상하게 연예인 가운데 치매환자가 많았다. 영화 ‘십계’와 ‘벤허’의 수퍼스타 찰턴 헤스턴, 터프가이 찰스 브론슨(‘황야의 7인’ ‘데스위시’), 피터 포크(TV영화 ‘형사 콜럼보’), 버지스 메레디스(‘록키’의 발보아 코치), 잭 로드(‘하와이 5-0’), 리타 헤이워스(‘질다’), 다나 앤드류스(‘추락한 천사’), 거장감독 오토 프레밍거(‘돌아오지 않는 강’ ‘엑소더스’)도 그랬다.
가수 중에선 나도 광팬인 페리 코모(‘불가능’ ‘마술 같은 순간들’ ‘내 집은 그대의 집’), 글렌 캠벨(‘갈베스턴’ ‘라인스턴 카우보이’), 복음성가 가수 토마스 도지(‘존귀한 주여, 내 손을 잡으소서’) 등이 있고, 클래식 음악계에선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볼레로’)과 미국의 현대작곡가 아론 코플랜드(‘아팔라치아의 봄’ ‘로데오’ ‘빌리 더 킷’)가 치매에 희생됐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 웰터급과 미들급 타이틀을 석권한 불세출의 권투선수 슈거 레이 로빈슨, 야구선수 조 애드콕 및 마브 오웬, 풋볼선수 톰 피어스, 아이스 학키선수 빌 쾍큰부시, 영국소설가 서머셋 모옴, 미국작가 에이브 버로스 및 아이리스 머독, 그리고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로 미국 국보급 화가 반열에 오른 노먼 록크웰도 치매환자였다.
알츠하이머는 저명인사들을 알아주지 않는다. 감기에 홈리스도, 대기업 총수도 걸리는 것과 같다. 재임 중 매년 11월을 ‘알츠하이머 경각의 달’로 지정했던 레이건 대통령 자신이 아이러니하게도 퇴임 후 그 병에 걸렸다. 미국에선 71초마다 치매환자가 한명씩 늘어난다. 오는 2050년엔 환자가 현재(500만명)의 3배 수준인 1,38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부당국은 현재 65세 이상의 치매환자가 57만6,000여명이지만 10년 후엔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알츠하이머 환자 3,560만명(2010년 기준)이 2030년엔 6.570만명, 2050년엔 그 3배인 1억 1,54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지구촌 전체가 ‘알츠하이머 병동’으로 변한다는 얘기다.
신의원은 원래 은퇴 후 입양아 선교사역에 전념할 계획이었다. 입양아의 롤모델인 신의원 다운 발상이다. 하지만 그에겐 이제 더 시급한 과제가 생겼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허물어가고 있는 알츠하이머의 퇴치와 환자들의 인권복지 증진에 남은 열정을 쏟아 붓도록 권하고 싶다. 미국에선 매년 5만여명이 치매로 사망한다. 그 가운데는 한인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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