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먼저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곧바로 시작되는 고민이 있다. 무슨 전공을 할까. 대학생 10명 가운데 9명은 재학시 한두 번 전공을 바꾼다. 10명 중 3명은 전공을 쫓아 아예 다른 학교로 전학하기도 한다. 전공을 정하기 위해 학생들은 심혈을 기울이지만,정작 고용주들은 전공을 그다지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30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연합회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93%의 기업이 “지원자의 전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능력, 소통능력”이라고 답했다. 물론 분야에 따라 특정 전공을 요구하는 기업도 있고, 전공에 따라 보수의 격차도 심하다. 하지만 기업은 위의 세가지 기본 능력이 부족한 지원자를 외면한다.
또한 7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대중미디어 연구소는 “테크놀로지, 비즈니스, 의료, 교육, 정부기관 등 모든 분야에서 고용주가 원하는 것은 학점이나 대학 이름보다 실질적인 경험이다”라고 밝혔다.
그런 경험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대학 강의실 혹은 교과서일까. 그렇다고 믿는 학생들에게는 대학 이름이 마약 같은 역할을 한다. “X대학의 졸업장을 받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라는 환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반면 실질적인 경험이 캠퍼스 밖에 있다는 것을 아는 학생은 일찌감치 인턴십, 창업 등을 통해 실전 경험을 시작한다.
“인간이 들짐승과 다른 점은 과거의 경험을 보존하는데 있다. 들짐승에게 경험은 그때뿐이지만 인간은 과거 일을 기억하고 사색함으로 들짐승들처럼 단지 물질세계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찾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라고 실용주의 교육의 선두주자 존 듀이가 역설했다. 과거 경험을 기준점으로 삼아 오늘의 당면한 과제를 풀어가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자연스레 경험은 교육의 시작점이 된다.
그런데 1957년 소련에서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자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교육과정을 전면개편하기 시작했다. 바로 학문중심 교육 혁신이다. 특히 과학과 수학의 효율적인 학습을 목표로 이론과 법칙을 체계화하여 ‘지식의 구조’를 정립했다. 학문중심으로의 전환은 학습자로 하여금 강의를 받아 적고 시험을 위해 암기하는 수동적인 자세를 갖게 했고, 표준시험을 학습자의 능력판단 기준치로 삼게 했다. 그것은 대학 진학을 위한 SAT나 ACT시험에서 만점을 받으면 ‘가장 교육을 잘 받은 학생’으로 부추기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학문ㆍ지식ㆍ이론ㆍ법칙 등은 교육의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 도구는 공장을 건설하고, 자동차를 생산하고, 고속도로를 뚫지만, 그에 따르는 환경훼손이나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아가 가르치는 자를 정보와 기술의 전달자로, 학습자를 단순한 수용자로 만들었다. 그 결과 의미를 찾는 소중한 인간의 경험은 설 자리를 잃었고 들짐승들의 그때뿐 경험만 남았다.
그때뿐 경험의 흔적은 기업과 대학의 쌍방 손가락질에서 볼 수 있다.“제대로 훈련을 시켜서 보내라”는 기업의 요구에 대학은 “그런 요구는 무리다. 대학이 하는 일은 이론과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지 기술훈련이 아니다”라고 맞선다. 서로의 책임전가 사이에 등이 터지는 것은 학생이다.이런 와중에 학생으로서 할 일은 무엇일까.지식과 이론을 우선적으로 쫓기보다(이 부분은 그 무엇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해 주는 구글에게 맡기고), 컴퓨터와 인터넷이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산 경험을 통해 의미와 가치를 생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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