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지자 까마귀 울고 밤하늘엔 찬 서리만 가득강기슭 단풍 숲, 고기잡이배 등불. 시름만 깊어고소성 밖 한산사깊은 밤 종소리. 나그네 배에 은은히 들려온다.
성당(盛唐) 시인 장계(張繼)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다. 56세 때, 당시로서는 이미 상당히 노경에 든 나이에 실의에 차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 낙향 길. 풍교 근처 부두에 정박하다 듣게 된 한산사의 종소리. 거기서 불후의 명시가 탄생한다.
사위가 고요한 한 밤중에 들려오는 산사의 종소리. 조용히 귀 기울인다. 모든 것을 날려 보내는 느낌이다. 아픔도, 서러움도, 아쉬움도, 그리고 자랑마저도.
언제부터였나. 그 한 밤중 종소리 행사가 한국에서 제야(除夜)의 풍속으로 자리 잡은 것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의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 행사가 열리고 10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보도다.
온 사방 만 백성의 시름과 번뇌를 씻고, 새로운 한해를 축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는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뜻으로 사원에서 종을 108번 울렸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모든 사람을 상징하는 ‘33’번으로 타종 수는 줄어든 것이다.
새로운 한 해를 축원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한 해를 무사히, 또 아름답게 마감한다는 뜻이 더 강한 게 제야의 종소리 행사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시작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끝맺음이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쉬운 것이 이제는 점차 잊혀져가는 제야의 시속이다. 그 중의 하나가 세배 풍속이다. 세배하면 새해에만 드리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요즈음이다. 그게 아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작은 설’로 불렸고 이날 묵은세배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 이 날이 되면 사당에 절을 하고, 가까운 친척을 찾아뵙고 한 해 동안의 감사와 축원을 드리는 의미로 행해졌던 풍속이다.
저녁 무렵부터 밤늦도록 초롱불을 든 묵은세배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는 다름 아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집안 어른에게, 이웃에게, 친지에게 전하는 옛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다.
2013년 12월31일. 364일이 지나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하루다. 이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아픔도, 아쉬움도, 자랑마저도 모두 날려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의 마음을 주변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아닐까.
‘근하신년-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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