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만해도 9,000개의 매장을 자랑하던 대형 비디오대여업체인 ‘블록버스터’가 전면 폐쇄를 결정했다. 현재 남아있는 300개 매장은 내년 초가 되면 다 문을 닫는다고 한다. 블록버스터 소유주인 디시 네트워크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온라인 영상 서비스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폐쇄이유를 밝혔다.
전통적인 비디오 대여점의 오프라인 영업방식을 고수하는 바람에 파산, 매각 절차를 거친 블록버스터의 뼈아픈 결말이다. 2000년 신생업체 넷플릭스의 투자 제안을 거절했던 블록버스터는 뒤늦게 온라인 대여와 스트리밍 등의 처방을 시도했지만 디지털 시대에 변화하는 산업 환경을 따라가기는커녕 좌초하고 말았다. 아무리 브랜드 가치가 뛰어나도 한번 떠난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블록버스터의 전성기인 9년 전이라면 대형 음반 체인점 ‘타워 레코드’가 파산을 거론할 무렵이다. 블록버스터는 먼저 시작된 음반시장의 지각변동을 보면서 ‘인터넷’이란 거대한 복병 앞에 자신도 무릎을 꿇게 될지 몰랐을까. 아닐 것이다. 브랜드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신기술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시대착오적 대처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15년 전 뉴욕 킴스 비디오에서 일한 적이 있다. 고객 명단 데이터 정리를 했는데 당시 입력된 숫자가 2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희귀 영화들이 감독별로, 장르별로 진열돼있던 킴스 비디오는 영화 매니아는 물론이고 스파이크 리 같은 영화인들의 아지트였다. 1990년대 뉴욕을 돌아다니던 영화인들 중에는 모르는 이가 없었을 만큼 뉴욕의 명물이었던 킴스 비디오도 지난 2009년 문을 닫았다. 5만5,000여 편의 영화소장품은 킴스 비디오 김용만 사장이 내건 3가지 조건을 받아들인 이탈리아 시실리의 소도시 살레미로 옮겨졌다. 오프라인의 비디오 스토어는 없어지지만 그 많은 영화들은 다른 주인을 찾아 계속 존재하길 바라면서 바다를 건너갔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고, 인터넷이 비디오 스토어를 죽인 것은 맞다. 영화 보는 날을 정해 비디오 스토어에 가지 않아도 다운로드한 영상을 저장해놓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목록만 쳐다보면 되는 세상이니 오프라인 스토어는 분명 존재의 이유가 없다. 하지만 10년 뒤에도 그럴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영화, TV, 비디오 같은 영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상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지속될 것임이 틀림없다. 지금은 인간을 이야기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온라인이 되었지만 인류는 컴퓨터 속에서 오래 머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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