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내티에는 ‘100 Wise Women’ 이라는 여성단체가 있다. 직장여성들의 자질을 계발하여 지도자로 키우며, 네트워크도 제공해주는 비영리 여성단체이다. 가끔씩 유명인사를 초청하여 대규모 강연도 하고, 계절마다 각 계의 직장여성들을 조찬모임에 초대하여 토론의 장을 만들면서 네트워킹을 하게 한다.
몇 년 전부터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된 나는 매 번, 네트워킹이나 자질계발의 본 목적보다는, 토론을 통해 내면이 ‘정화’ 혹은 ‘순화’ 되는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출근 전의 모임이라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는 불편함도 불사하고 열심히 참석하고 있다.
지난 모임은 ‘Being Authentic’ 이란 주제로, 내게 더욱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스스로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가려낸 후, 직장에서 그 장점을 살려 커리어의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주제가 여성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었는데도, 여성모임이었기 때문인지 결국엔 여성으로서의 특성이 많이 언급 되었다.
자녀양육과 일의 균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예상대로였다. 여성이기 때문에 상사, 동료, 부하직원들에게 불필요하게 신경 쓸 때가 많다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일과 전혀 관계없는 옷차림, 걸음걸이 등의 습관도 그 중 하나였다. 남성들 앞에서 그들 보다 나은 자질을 보이는 경우나 인정받는 경우, 은근히 눈치를 보게 된다고도 했다. 우수한 자질을 보이면 은근히 질투하면서 압력을 가하는 남성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실패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남몰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 자신을 더욱 매진하게 된다고 했다.
미국여성들의 직장에서의 고충이 내면적으로는 아직도 한국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충과 별반 다름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내게는 생소한 사실로, 나는 반대의 경우 속에 살기 때문이었다. 여성이 귀한 전산과에서 공부하고 일하다 보니 처음부터 특별대접을 받아서 기만 살고 눈치도 없다고나 할까.
여성 과학인 교육은 학교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특별히 장려, 보조하지만 그 수가 별로 늘지 않는 실정이다. 우리 대학에서도 과학 분야에 여성 교수의 숫자를 늘리고자 안간힘을 쓴다. 여학생의 과학모임도 특별보조를 받는다. 나 역시 어쩌다가 클래스에 여학생이 있게 되면 특별히 신경쓰고 관찰하면서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학교풍토가 기업 보다는 좀 더 개방적이다 보니 남자교수들이 동양여성인 나보다 훨씬 더 여권옹호에 열심인 것도 같다. 20년 일을 하는 동안, 한 남자교수가 여교수들에게만 이유 없이 압력을 가하는 것을 한 번 본 적이 있긴 했다. 당시 모든 남자교수들은 그를 정면에서 무시하면서 여교수들을 보호해주었다. 그는 지금 과에서 외톨이로 겉돌고 있다.
이번 모임은 직장에서의 나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했다. 내 특성은 여성 보다는 동양계라는 사실이다. 동양, 특히 한국과 관계된 일이 있으면 내게 맡겨지고, 어찌 처리하든 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른 일도 한인이기 때문에 잘 하리라 은근히 믿는 것도 같다. 그 바람에 더 큰 책임감을 느껴 내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도 있을 정도로.
첫 시간에 동양계 여교수를 보고 약간 놀라던 남학생들도, 그렇기에 더욱 깍듯이 대해주면서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 같다. 물론 언어를 들먹이며 스트레스를 주는 학생도 아주 없진 않지만, 그건 낙제생들의 경우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얼굴 하나 때문에 내 자질만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넘치는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은근과 끈기를 갖고 근면함과 똑똑함의 이미지를 심어준, 앞서 이 땅을 밟은 동양계, 특히 한인들께 뼈저리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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