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겪고 있는 참담함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인생말년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의 그림이 그려진다. 대통령 했으면 뭐하나. 지금처럼 인격적인 모욕 당하고 온 식구들이 범죄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고 측근들도 불려 다니고 있으니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신세가 말씀이 아니다. 불쌍한 생각마저 든다.
양지에서만 큰 사람은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맞았을 때 오판을 내려 불행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전두환 인생’은 전형적인 양지의 인생이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육사생들의 쿠데타 지지데모를 이끌어 낸 공로로 최고회의의장 박정희 장군의 수행부관으로 발탁 되었고 중앙정보부 총무과장을 거쳐 청와대 경호부대인 수도경비사 30대대장을 지냈으며 대령으로 진급하자 서종철 참모총장의 수석부관으로 발탁되어 영관장교를 대표하는 육군본부의 실세로 떠올랐다. 그후 월남에 파견되어 장군진급의 지름길인 백마부대 연대장을 지냈고 정규육사 1기 중 가장 먼저 별을 달았고 청와대 경호실 직속인 김포 공수 제1여단장으로 발령받아 박종규 실장을 든든한 빽으로 두게 되었다. 윤필용의 가장 측근이면서도 ‘윤필용 사건’ 때 그가 구속되지 않은 것은 박종규가 하나회 보스인 그를 적극적으로 커버해 주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 피살사건 때는 보안사령관이었고 당시 합수부장으로 그가 얼마나 세력이 막강 했는가는 우리가 다 아는 바다.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고 정승화 참모총장의 인사발령대로 물먹고 동해경비사령관으로 쫓겨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육군중장으로 예편 되었을 것이다. 대신 광주 유혈사태의 책임을 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언젠가는 극우세력의 도움을 받아 정정당당하게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하여 당선 됐거나 아니면 국방장관 또는 유명한 정치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통솔력 있고 부하를 챙기는 의리가 강해 군에서는 화제의 인물이었으며 정규 육사 세력의 심볼이었기 때문에 후일을 기약 받을 수 있는 백그라운드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시기에 결정적인 오판을 했다. 12.12 쿠데타를 감행했고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에 올랐으며 물러난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대통령자문회의를 만들었고 노태우 선거운동 지원과 세종연구소 설립을 핑계로 수천억원을 거둬들였다가 그 돈을 빼돌린 혐의로 지금 가족과 친척이 풍비박산이 난 것이다. 그의 말대로 지난 24년 동안 수없는 수모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양지만을 돌아다닌 권력지향형의 지도자가 겪는 체벌성 말로다. 그가 물먹는 인사를 받아들이고 음지에서 지내는 아량을 가졌더라면 오늘의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똑똑하다고 소문난 그가 왜 계속 상황판단을 그르쳤을까. 양지만을 찾아 다녔기 때문이다. 양지에서만 자란 지도자는 요령과 의리는 있어도 철학이 빈곤하기 마련이다. 철학이 없으니 앞을 내다보는 눈을 가질 리가 없다. 현실타파만 중요시 한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쌓여 시한폭탄으로 변하는 것이다.
사람은 음지에서 지낼 줄 알아야 한다. 물 먹고 바람 맞을 때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마음의 눈이 열려 앞을 내다보게 되는 것이다. 정치판이나 직장이나 마찬가지다. 양지만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결정적인 때 판단을 그르친다. 후일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그 기회를 눈뜨고도 못 보는 장님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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