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지인들과 니카라과에 다녀왔다. 5월부터 시작된 우기로 습하고 더웠으나 싱싱한 초록의 나무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우리가 방문한 수도 마나과 근교에는 중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니카라과 호수가 있다. 신기한 물고기가 많다는 이 호수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담수 상어가 살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가 니카라과 호수를 중심으로 가까운 장래에 만들어질 것이라고 하여 기대가 크다.
중미에서 가장 큰 나라인 니카라과는 1522년 스페인 탐험대에 의해 정복되었다. 1821년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된 후 잠시 멕시코의 일부였었고, 다음에는 중미 연합국가의 일부였다. 1838년에 지금의 중미 한복판에 완전 독립했지만 니카라과를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온 영국과 미국은 독립된 후에도 줄곧 내정간섭을 해왔다.
1937년 미국에서 훈련받은 소모사 장군은 부정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아들까지 연이어 약 40년 간 소모사 가족은 독재정치를 하고 부정축재를 했다. 1972년 대지진으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 가운데도 소모사 정권은 국제원조를 빼돌렸고, 이때부터 극심해진 국민들의 분노로 인한 혼란과 내전이 1990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기간 공산주의 이념의 산디니스타 좌익세력과 미국의 비밀지원을 받은 콘트라 반군간의 내전은 국민들에게 심각한 상처와 분노와 분열을 남겼다. 정치적 혼란은 인플레이션과 경제파탄을 불러와 열대의 낙원이라 불렸던 이 나라는 중남미를 통틀어 2번째로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80%의 인구가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으며 국민의 27%가 영양실조 상태라고 한다.
국가가 통째로 강도를 만난 나라, 그 국민들의 삶은 비참하였다. 우리가 방문한 지역 주민 대부분은 하루에 한끼로 살았고, 허름한 양철집의 바닥은 흙이고 하늘이 지붕이었다.
매일 열대 소나기가 쏟아지는 그곳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주민들을 보며 나는 인간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나는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아니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인가?그곳에 계신 여자 선교사님은 학교를 세우고 버스로 아이들을 데려와 공부를 가르치고 계셨다. 11시경에는 아침 겸 점심을 모든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 사람의 지속적인 헌신이 그 지역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많은 학생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하고 치료를 했다. 또 시력검사 후 필요한 사람들에게 안경을 주었으며, 침술은 아픈 그들의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다.
의사인 아내가 이번 여행에 동행하여 큰 힘이 되어주었다. 아내는 어린 학생들을 주로 보았는데, 이따금 어린학생에게 작은 선물도 주고, 통역하는 청년과 어린환자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진료를 했다.
그때마다 가난과 상처에 찌든 어린이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웃음 띤 아이들은 시들었다가 이슬 먹고 활짝 살아나는 화초 같았다. 꽃봉오리처럼 살그머니 피어나는 행복한 표정은 고통 속에서 솟아나는 희망이었다. 물질을 뺏어간 강도들도 어린이들의 웃음과 소망은 완전히 가져갈 수 없음을 보았다.
우리가 떠나기 전날 동네 마리아치 소악단이 나타났다. 빛바랜 검은 양복에 챙 넓은 모자 ‘솜브레로’를 쓴 아저씨들이 기타, 트럼펫, 하프 등의 악기로 중남미의 신명나면서도 한이 서려있는 듯한 가락을 연주해 주었다.
니카라과를 떠나는데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한 이야기가 자꾸 떠오른다. 사마리아인은 강도당한 사람을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정성껏 보살펴 준 다음날, 은화 두개를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을 잘 보살펴 주세요, 만일 돈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겠습니다.”나는 선한 사마리아인인가 아니면 형식적인 이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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