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에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아이티와 붙어있는 쿠바 건너편의 섬 나라로 수도 산토 도밍고는 콜럼버스가 첫발을 디딘 곳으로 북남미 통틀어 가장 오래된 도시다. 흑인국가지만 대부분 혼혈이라 피부가 까맣지 않고 초컬릿 색이다.

이 나라의 남동쪽에 푼타카나(Punta Cana)라는 해안지방이 있다. 프랑스와 미국의 유명한 호텔들이 줄을 이은 디럭스 휴양지인데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방값이 저렴하다. 호텔에 체크인하면 레스토랑에서부터 골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공짜다. 와인을 한병 마시든 두병 마시든 손님이 원하는 대로 갖다 준다. 방값에 다 포함되어 있다.

팁도 없다. 밴쿠버에서 왔다는 캐나다인 골퍼에게 “당신들은 얼마짜리 패키지인가”라고 물었더니 항공료, 방값, 먹는 것, 술, 골프 등 다 포함해서 8박9일에 1인당 2,000달러 냈다고 했다. 골프를 좋아하는 코리언들의 단체여행에 꼭 어울리는 휴양지다. 호텔 밖을 나서면 허허벌판에 사탕수수 밭이 펼쳐져 있고 좁은 도로 양옆에는 판잣집들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 도미니카 공화국( 카리브 해에는 ‘도미니카 공화국’과 ‘도미니카’라는 두 나라가 있다)을 여행하노라면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된다. 도시나 시골 어디를 가도 빈터만 있으면 아이들이 야구연습을 하고 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클래스를 바꿔가며 온종일 야구경기를 벌이고 있다. 축구와 농구. 테니스를 하는 학생들은 한명도 볼 수가 없다. 야구장에 어머니들이 많이 나와 있는 것도 진기한 풍경이다. 성당에 가면 기도하는 어머니들이 많은데 이들 대부분이 아들의 야구경기 우승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도미니카 공화국은 온 국민이 야구에 미쳐있는 나라다. 왜 그럴까.

야구는 이 나라에서 스포츠라기보다 가족의 생계가 걸려있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가업이다. 식구 중에 한사람만 미국 야구팀에 픽업되면 온가족이 평생 먹고 사는 걱정을 않게 된다. 호텔 종업원이 최고의 직장에 속하는데 한달 봉급이 250달러다. 공장도 없고 수출품이라고는 사탕수수와 시거(담배)뿐인 나라다. 대학교 나와 봤자 취직할 데가 없다. 그런데 집안에서 연봉이 수백만 달러인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 한명만 나오면 평생을 먹고사니 야구선수 되는 것이 이 나라 젊은이들은 물론 어머니들의 꿈이다. 해마다 6월2일 미국의 모든 프로팀이 이곳에 내려와 선수 스카웃을 하는데 여기에서 선발되면 마을에서 큰 잔치가 벌어진다.

미국 프로야구팀의 외국인들 중 도미니카 출신이 가장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야구 프로선수의 20%가 도미니칸이라니 놀랍다. 야구선수 수출국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GNP 10%가 도미니칸들의 송금인데 대부분 미국팀의 야구선수들이 집에 보내는 생활비라고 한다.

홈런 500개를 돌파해 보스턴 레드삭스를 월드 챔피언으로 올려놓은 전설의 데이빗 오티즈,사이영상을 세 번이나 타고 여덟 번이나 미국 올스타 선수로 선발된 레드삭스 핏처 페드로 마티네즈, 엔젤스팀의 홈런왕 브라디미르 게레로, MLB(메이저리그) 최고령 선수인 필리스팀의 불멸의 타자 훌리오 프랑코 등 수없는 수퍼스타들이 도미니칸이다.

한국이 지금처럼 잘살지 않고 좀 가난했더라면 억척같은 국민성으로 미루어 더 많은 박찬호와 추신수, 류현진을 배출하지 않았을까. 미셸 위가 좀 배가 고팠더라면 메이저 챔피언십을 벌써 차지하지 않았을까. 엊그제 바하마대회에서 우승한 여성골퍼 이일희가 한국인의 기질을 보여준 좋은 예다. 배고파야 수퍼스타가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