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의 여인’대처, 죽는 순간까지‘철의 장막’ 배우 출신 레이건, 솔직 공개·환자들 위로
■ 생전 상반됐던 대응방식 새삼 주목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드물다. 인간의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헤아릴 수 없는 숱한 생명이 생성하고 소멸했지만 망각의 물결을 거스르며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전한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난 8일 87세를 일기로 타계한 마가렛 대처전 영국 총리도 세계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새겨 넣은‘ 소수자’ 가운데 한 명이다.
87년에 걸친 생애를 통해 대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녀는 유능한 정치인이었고, 자유시장의 신봉자이자 전도사였다.
34세에 정치에 입문한 후 불과 20년만인1979년 “파업으로부터 영국을 구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총리직에 오른 대처는 1980년부터 1984년까지 무려 4차례 노동법을 개정해며 당시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던 노조와 정면대결을 펼쳤고 결국 이들을 굴복시켰다.
강력한 지도력으로 영국의 노사분규를 50년래 최저수준으로 끌어내린 그녀는‘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과감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경제를 부흥시켰고 철저한 반공노선을 내세운 능란한 외교정책으로 냉전 제를붕괴시키는데 기여했다.
영국 정치사에 첫 여성 총리로 기록된 대처에게‘ 철의 여인’은 썩 잘 어울리는 별명이었다.하지만 강철 같은 의지로 고질적 ‘영국병’을 다스렸던 그녀도 치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대처는 10년 전인 2003년 수차례 뇌졸중을 일으켰다. 정도가 심하진 않았지만 이 때문에 연설과 강연 일정을 모두 취소해야 했고 공적인 생활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딸 캐롤이 2008년에 쓴 회고록에 따르면 대처는 뇌졸중을 일으키기 이전부터 인지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등 정신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는 이런저런 신호를 보였다.
남편 데니스를 지극히 사랑했던 대처는 반세기 넘게 고락을 함께 해온 그가 2003년 암으로타개한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캐롤은 대처가 남편의 행방을 묻을 때마다 ‘불편한 진실’을 되풀이해서 일러주어야 했
고, 그때마다 철의 여인은 눈물을 글썽였다.캐롤의 회고록이 발간되자 대처의 정치서클에 속한 사람들과 그녀를 존경하는 지지자들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캐롤이 어머니의 사생활을 침범했고 그녀의 존엄성을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지난해 대처의 ‘치매’를 다룬 영화 ‘철의 여인’ (The Iron Lady)으로 메릴 스트립이 오스카상을 거머쥐었을 때에도 영국의 일각에서는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대처는 자신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그녀의 이같은 태도는 동 시대 정치인이었던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재임 중 대처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레이건은 퇴임 후인 1994년 주치의의 설명이 붙은자필 공개편지를 통해 그가 알츠하이머에 걸린사실을 밝혔다.
일부 호사가들은 이들의 엇갈린 대응방식을영국인의 폐쇄성과 미국인의 개방성을 빌어 설명했고 혹자는 레이건의 배우 경력이 사람들의시선을 편안하게 느끼도록 만들었을 것으로 추론했다.
본격적인 치매증상이 나타나기 2~3년 전부터 레이건도 깜빡깜빡 기억을 놓치곤 했다. 일단 치매판정이 떨어지자 레이건은 부인 낸시여사와 마주 앉아 자신의 병에 대해 어디까지외부에 공개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띄운 공개편지에서“ 우리의 흉중을 털어놓는 것은 알츠하이머에 대한인식을 높이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라고 말했다.레이건은 이어 사실을 밝히는 것이“ 이 병에걸린 개인과 가족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를가져오기를 희망했다.
알츠하이머와 다른 형태의 치매는 오명을수반하는 특이한 병이다. 심장병에 걸렸다고해서 수치를 당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치매는 다르다.
치매는 기억을 지우고, 인격을 말살한다. 제아무리 도덕군자라도 치매에 걸리면 자기 통제력를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평소 그를 존경하던사람조차 외면하게 만드는 몹쓸 병이 치매다.세계 초강대국의 최고 지도자였던 레이건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털어놓은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결정이었다. 20여년 전 제럴드 포드전 대통령의 부인 베티 포드 여사가 자신이 알콜 중독자이며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을 솔직히 밝힌 것에 비견할 만하다.
반면 대처의 가족은 단 한 번도 그녀의 병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다.10여년 전의 연쇄 뇌졸중이 초래한 치매인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치매인지조차 밝히지않았다.아마도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대처가 가족들의 입단속을 시켰을 수도 있다. 알츠하이머 확진이 떨어졌을 당시 대처에게는 이미 그런 결정을 내릴 만한 능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가족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그녀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마주친 알츠하이머에 어떻게대응했는지 정확히 알 도리가 없다.대처의 ‘마지막 승부’는 어차피 승산이 없는싸움이었다. 알츠하이머를 극복하고 기억의 부
활을 이룬 사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치매는 사망으로 끝난다. 죽어야만 벗어날 수있는 멍에다.
대처는 사생활이 속속들이 노출되는 이른바‘어항 속의 삶’을 살아온 세계의 공인이었지만그녀 인생의 마지막 단계는 일반에 공개되지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에 영원히 묻히게 됐다.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수시대’의 인구고령화 현상에 따라 앞으로 치매환자가 크게늘어나리라는 점이다.
치매는 공적인 지위나 지적 성취를 가려 찾아들지 않는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치매의 과녁판 앞에 서게 마련이다.알츠하이머의 화살을 맞느냐 안 맞느냐는 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치매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하지만 죽음이 찾아들기 이전에 주변인들은 이미 그를 잃게 된다. 치매환자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대처나 레이건은 후대에 알츠하이머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찾아온 치매는 무시하거나등을 돌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병력도 무시할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다.
<뉴욕타임스 특악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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