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행크스 주연의 ‘천사와 악마’(Angels and Demons)라는 영화가 있다. 교황이 독극물로 주사되어 갑자기 숨지고 추기경 4명이 납치된다. 범행을 저지른 비밀 결사단은 이어 후임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비밀회의 ‘콘클라베’ 분위기까지 컨트롤하려 시도하는 댄 브라운 원작(‘다빈치 코드’ 작가)의 스릴러물이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점은 비밀회의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과 베드로 성당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로 ‘열쇠를 가지고’라는 뜻이며 교황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의 비밀회의를 의미한다. 원래 교황 선출은 일반신자와 사제들의 투표로 이루어졌었으나 왕들의 간섭과 부정이 심해 추기경들만으로 투표자격을 제한하게 된 것이다.
추기경들은 어떤 기준으로 교황을 선출할까. 독일의 프리드리히 피플 추기경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콘클라베에 적용되는 교황자격 요건을 밝힌 적이 있다. 이에 의하면 교황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첫째 신앙심이 깊어야 하고, 둘째 외교적일 것, 셋째 세상정치를 포용하는 능력이 있을 것, 넷째 이탈리아 정부의 태도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시야를 지닐 것 등이다. 이탈리아 정치에 대한 안목을 요구한 것은 교황이 로마 대주교를 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탈리어를 모르면 교황에 선출되기 힘들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에 선출된 직후 행한 연설에서 “나의 이탈리어 발음이 잘못 됐으면 고쳐주세요”라고 조크를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톨릭에서 이탈리아인 아닌 폴란드인이 처음 교황으로 뽑힌 것은 혁명에 가까운 변화였지만 로마인들에게는 이보다 그들의 새 대주교가 이탈리어를 하느냐 못하느냐에 더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바오로 2세는 작곡가 쇼팽과 함께 폴란드의 자존심이다. 나는 그의 고향 크라코프(출생지는 바도비체)를 가본 적이 있는데 성당은 물론 레스토랑 등 가는 곳마다 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가톨릭 신앙이 쇠약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폴란드만은 그렇지가 않았다. 신앙의 열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었지만 교회적으로는 지나치리만큼 보수였다. 강력한 인권옹호자였지만 교회 안에서는 순종을 강조했다. 그는 민중 지향적인 것은 받아 들였으나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자율적 민주교회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를 분명히 했다. 가톨릭이 무너지지 않고 수천 년을 내려온 것은 신도와 사제의 순종적인 신앙이지 민주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에 수반되는 물질주의에 몹시 의구심을 가졌다. “순종하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는 그의 상징 어록이다. 바오로 2세의 이같은 보수주의 때문에 고통을 받은 지역이 브라질이다. 바오로 2세는 브라질에 번지고 있는 해방신학을 반대 했으며 보프 등 해방신학자들을 심판대에 올려 엄하게 꾸짖었다. 바로 이 해방신학 규탄에 앞장선 사람이 당시 바티칸 신앙교리성 장관인 라칭거 추기경(후일 베네딕토 16세)이었다.
바오로 2세는 27년간 교황으로 재위했다. 이어 그의 보수주의를 계승한 베네딕토 16세가 7년간 교황직에 머물러 이번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추기경 117명의 대부분은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가 임명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콘클라베의 분위기가 진보적이기보다는 보수적일 것이라는 추측은 당연하다. 이같은 배경을 고려하면 며칠 후 열릴 콘클라베에서 누가 새 교황에 선출될지 대략 그림이 잡힌다. LA의 마호니 추기경과 같은 진보파는 절대 교황에 뽑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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