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념 행사
3.1절은1910년에 일본에 감정 당한지 9년 후인1919년 3월1일 일본식민지 지배하의 한국에서 일어난 거족적인 민족독립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다. 3.1운동 이후 전국을 휩쓴 시위운동 상황을 보면 집회회수 1,542회, 참가인원수202만3,089명, 사망자수7,509명, 부상자1만5,961명, 검거자5만2,770명, 불탄 교회 47개소, 학교2개교, 민가715채나 되었다. (일본측발표).
이 역사적인 독립운동은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비록 많은 희생자를 낸 채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대내외적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선명히 드러낸 바가 되어, 우리 근대민족주의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사진은 그때 당시의 서울에서의 만세 행진과 일본 경찰이 살해한 여학생 시체를 길가에 버린 것을 보여준다. 적십자사 제공).
매년 3.1절 행사가 미국에서도 열리지만 한국에서처럼 젊은 학생들과 초등학교 학생들이 독립기념관을 찾아가거나 행진을 하면서 3.1절 당시의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한국에서도 40%의 초등학교 학생들은 아직도 3.1운동의 뜻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하물며 미국에서 사는 한국학생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우리의 3.1절 행사에는 한인회 임원들과 사업인들, 노인회 회원들이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지 학생들이 참석하는 것은 아주 드문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남부 뉴저지 한인회 (회장 함채환)에서는 금년 들어 3년째 한국학교 학생들이 참가하는 뜻있는 기념행사를 가진다. 연극, 한국의 노래, 독립선언문 낭독한다. 태극기를 들고 모두가 만세를 부르면서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다.
3.1독립운동의 희생자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 중에서 필자는 최소한 두 순국선열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 한 분이 만해(萬海)한용운(1879 ~ 1944)님이다. 불교 혁명가로 독립선언서를 공저한 33인중의 한 분이시다.
우리의 애송시, 그의 “님의 침묵” 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중 약)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이 “님”을 그의 “조국”이라고 해석해보면 그이가 얼마나 애처롭게 조국을 그리워했는지 쉽사리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인데 어떻게 불 땐 방에서 편히 살겠느냐며 만해는 냉골의 거처에서 꼿꼿하게 앉아 지냈다. 해서 ‘저울추’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돌집(조선총독부)이 마주 보이는 쪽으로 당신의 집을 지을 수 없다며 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만해는 깨달음을 얻은 후 오도송에서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그네의 수심에 잠겼던가. 한마디 소리쳐 우주를 설파하니 눈 속의 복숭아꽃 붉게 붉게 나부낀다"라고 읊었다. ‘눈 속에 핀 복숭아 꽃송이’가 바로 만해의 시요, 만해의 정신이었다 할 것이다.” (정끝별•문태준).
그렇게 그리워하든 조국이 1945에 찾아오기 1년 전 그는 혹독한 가난으로 별세하신다. 얼마나 애석한가!
다음의 순국열사로는 너무나 유명한 유관순 순국 열사를 잊어버릴 수가 없다. 1902년에 태어나 1920년에 18세의 젊은 나이로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다가 순국하셨다. “유관순 누나”로 알려진 이 이화여고의 학생은 그 시체가 7개로 토막 나 있었다고 한다. 일본이 한국인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
역사교육의 과제
3.1 독립선언서를 보면 아래의 공약 3장(번역 문)을 찾아볼 수 있다.
一.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 인도와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一.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이것을 요약하면,
1. 자유와 정의로운 사회
2. 독립의 영광
3. 인도주의, 비폭력 주의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민족의 정체성이 아닌가?
옛날에 한국에서 이씨왕조의 이름을 몽땅 외우든 식의 역사 학습은 전혀 의미 가없고 역사의식을 심어 주지 못한다. 미국의 현대 교육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학습방법은 핵심주제를 선정해서 탐구하는(Central Theme for Inquiry)것이다. 탐구 주제를 “3.1 독립 운동 정신”으로 선정했을 때 핵심 문제 (Essential Questions)의 예를 든다면,
• 3.1운동의 역사는 왜 중요한가?
• 한국인의 정체성을 3.1 운동에서 찾을 수가 있는가?
• 한국 민족은 어떻게, 왜, 뛰어 나는가?
• 우리 조상들의 수난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조명하고 있는가?
• 역사 교육은 왜 중요한가?
등 여러 문제들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3.1운동을 한 주제로 생각했지만 그 이외에 수많은 현대 역사 연구 주제들이 있다. 다만 3.1운동은 하나의 중요한 역사 연구과제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역사 교육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은 한국 정신, 한국인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진정한 한국 민족으로 성장하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어만 가지고는 모자라다. 우리한국학교들은 모두가 한국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 철학가, George Santayana가 “Those who cannot learn from history are doomed to repeat it.”라고 했듯이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그 쓰라린 비극을 되풀이 하게 마련이다. 우리 한국학교들은 우리 자녀들에게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를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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