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일요일 아침 7시, 남편이 교회 주차관리당번이라 함께 나갈 차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전날 밤 늦게 집에 온 아들 내외가 우리의 기척을 듣고는 방에서 나왔다. 함께 데리고 온 강아지 두 마리를 뒷마당에 내보낸 후 새해 선물이라며 카드와 액자에 넣은 큰 그림을 보여준다.
가로가 3피트이고 세로는 4피트가 더 되는 듯 했다. 집안의 다른 그림들과 조화를 맞추기에는 부담이 되는 크기였다. 바쁜 걸음에 얼핏 보니 아주 강렬한 느낌이지만 화면 위편의 채도가 높아 무게중심이 불안정해 보였다. 그래도 선물을 준비한 마음이 예뻐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대문을 나서면서 예전에 여동생이 지인이 그린 비싼 유화 풍경화를 나에게 줄 때 마음에 들지 않아 사양한 것처럼 어쩌면 걸지 못할 그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3시,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와 다시 그림을 보았다. 그때 그 그림이 나에게 속삭이는 말을 비로소 들을 수 있었다. 단지 두 가지의 색채만으로도 수많은 말을 하는 매력적인 그림이었다. 절반의 위는 가장자리에 가느다란 황색 프레임이 있는 코발트 블루이고 절반의 아래는 노랑 혹은 주황 같기도 한 주홍색이었다. 아늑하고 따뜻한 실내에 앉아서 넓은 창 밖, 짙은 청색 하늘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화가의 모습이 마음속에 그려졌다. 우리 아이들은 물론 젊은이들이 대개 좋아하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프린트한 것이다.
그림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 사랑받는 느낌, 은혜로운 느낌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즉 신의 손길이 강하게 느껴졌다. 로스코는 그림을 통하여 영적인 것을 추구했던 화가임이 짐작되어졌다. 그림 속 깊어가는 밤의 짙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니 온갖 생각이 물밀듯 밀려왔다. 걸어두고 화가의 영적인 여정에 대해 공감해 보기로 했다.
그림을 집안의 중심인 벽난로 위에 걸었다. 그 왼편에는 마침 액자와 같은 검정프레임의 커다란 시계가 있고 오른편에는 시편 23편이 새겨진 검정 나무 조각액자가 있어 무난하게 어울렸다. 추상화를 걸어두니 실내는 갑자기 철학자가 사는 집으로 탈바꿈 된 듯한 느낌이 왔다.
모두에게는 과거가 있고 현재와 미래라는 가능성의 시간이 있다. 또한 우리 발의 등불인 ‘말씀’이 있다. 그 사이에는 현재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묵상을 상기하는 천재적인 화가의 그림이 있다라고 설명하는 듯하다.
현재의 삶에 집중하면서 살다보면 과거의 삶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자주 이야기한다. 현재의 삶은 당연히 미래를 바꿀 수 있지만 과거마저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현재를 사는 삶의 자세에 따라 과거의 고통스런 상처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과거의 고난도 연단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무수히 저지른 잘못도 참회하며 개선하여 지금 올바른 삶의 모습을 보인다면 누가 과거의 잘못을 정죄하려 들 것인가.
대부분 사람들이 가슴 속에 상처와 후회를 안고 살아간다. 살면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이 더 많았겠지만 몇 가지 실수와 아픈 기억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며, 얼마나 남아있는지 짐작 못할 남은 생을 휘두르는 것은 좀 부당하지 않는가. 결코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선물을 받은 기쁜 마음으로 새해라는 시간을 맞이했다. 새해의 설렘만큼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잘 운용하는 것이 선물 받은 자의 도리일 듯 싶다. 작게나마 삶의 개선이 있어야 한다. 나쁜 습관 하나를 바꾸는 새해 결심을 한다. 집안을 어지럽히고 난 다음 당장 치우지 않는 습관이 있다. 한꺼번에 몰아서 치우고는 또다시 어질러 놓고 사는 것이다. 마치 청소는 청소부가 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살다가 어느 날 청소부로 변신하여 종일 청소하는 나쁜 습관이다. 올해는 안방마님보다는 더 자주, 할 수 있다면 매순간 청소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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