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산 조망대
한국이 엄청 달라졌다. 미국에도 없는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너무 들어서 신물나는 ‘또 그 얘기’가 아니라 내가 한국을 떠날 때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정초 풍속도가 남녀노소 모든 국민 사이에 보편화 됐다는 얘기다. 이틀 후면 꼭두새벽에 전국의 산과 바닷가로 사람들이 몰려간다. 새해 처음 돋는 해를 보기 위해서다.
서울에서만도 1월1일 새벽 수도권 일원의 18개 일출명소에서 ‘2013년 계사년 해맞이 행사’가 펼쳐진다. 서울 한복판의 남산 팔각정과 와룡공원을 비롯해 인왕산, 하늘공원, 대모산(강남), 안산(서대문), 개운산(성북), 아차산, 불암산, 우면산 등에서 시낭송과 해맞이 함성, 소원풍선 띄우기, 덕담 나누기와 만세삼창 등 다채로운 새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독도를 제외한 본토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유명한 울산의 간절곶과 제주 성산의 일출봉을 비롯한 전국의 해맞이 명소들도 인파를 맞을 채비에 한창이다. 강원도의 강릉. 정동진, 경포, 삼척, 속초, 동해 등 해안도시에서는 31일밤 국악공연 등 해넘이 행사로 시작해 1일 새벽 불꽃놀이, 해돋이 명상, 소망의 종 타종 등 해맞이 행사로 이어진다.
내 고향인 대전의 식장산에서도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식장산 머리에 해로 더불어 저녁하늘에 노을 붉도록, 나날이 단련한 굳센 팔다리…”라는 대전중학교 응원가에 나오는 대전 동편의 일출산이다. 학생시절엔 정상의 군부대 때문에 근처에도 못가본 산이 지금은 인기 산행코스가 됐다. 내년 해맞이 행사에도 3,000여명의 시민이 참가할 예정이란다.
나도 소싯적에 한국에서 해맞이를 해봤다. 중3 때 수학여행을 갔던 경주 토함산에서다. 가을이었으므로 신년 해맞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석굴암과 일출을 한꺼번에 구경하는 일정이어서 불국사 근처 여관을 꼭두새벽에 나섰다. 토함산 정상까지 엄청 멀었다는 것뿐 막상 일출은 뚜렷한 기억이 없다. 토함산은 이제 전국적인 새해 일출 등산코스로 떴다.
가을 수학여행 때 본 일출이나 1월1일에 본 일출이나 똑같은 해돋이다. 정초라고 태양이 더 크거나 더 밝지 않다. 하지만 풍파에 시달렸던 한해를 닫고 전인미답의 희망찬 새 365일의 첫 장을 여는 장소로는 산이 제격이다. 에너지의 근원인 붉은 태양이 치솟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산에서 첫 아침을 맞는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멀리 바닷가에 갔다가 일출구경을 못하면 낙담해서 본전 생각이 나지만 산에서는 손해볼 게 없다. 땀을 흘리며 장시간 고즈넉하게 산에 오르면서 여러 가지 신년계획을 세우고 다짐할 수 있다. 소위 ‘신년결의(New Year’s Resolution)’이다. 침대 위나 책상머리의 신년결의와 차원이 다르다. 새해 첫날아침 산 정상을 정복했다는 성취감도 대단히 뿌듯하다.
지난 10여년간 해마다 1월1일 새벽에 주로 혼자서 산에 올랐다. 처음에는 주립공원인 월레스 폴스를 자주 찾아갔지만 근래엔 벨뷰 인근의 가까운 산을 오른다. 오르기 시작할 때는 컴컴해도 정상에 도달하면 환하다(시애틀의 1월1일 일출시간은 7시58분이다). 도중에 가끔 등산객들을 만나게 되므로 외롭거나 무섭지 않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금년 마지막 토요일인 오늘 시애틀산악회는 노스 벤드의 래틀스네이크 레지에서 주말등반 모임을 갖는다. 해맞이 등반이 아니라 해넘이 등반이다. 내년이 뱀의 해인 계사년이어서 방울뱀 산을 산행지로 정했는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나는 1월1일 새벽에 이사콰의 스콱(인디언 말로 뱀이라는 뜻) 산에 오를 생각이었다. 나흘간 뱀 산 두 곳을 오르게 됐다.
LA에서는 신년 해맞이 한인행사가 한인타운에서 멀지 않은 헐리웃 산에서 열린다. 우리 가족도 단골로 참가했었다. 한인들이 모여 묵념(기도)하고 덕담 나누고 ‘고향의 봄’을 합창하는 그런 신년행사가 시애틀에도 있으면 좋겠다. 지난 2010년엔 이하룡 당시 총영사가 타이거산에서 산악회원 50여명과 새해맞이 등반모임을 가졌지만 단발행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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