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자기 나름의 고정된 생각을 갖고 있다. 나이에 대한 이런‘고정관념’이나‘편견’은 아주 어릴 적부터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나이 전형’(age stereotypes)이라고 부른다. ‘청춘’하면 자동반사적으로 퍼뜩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나 생각이 있듯이‘노인’과 연관된 판박이 사고도 분명 존재한다. 결국 나이 전형이란 특정 연령대에 따라붙는 고정관념인 셈이다.
“쓸모 없어지고 무기력”이라 여기면 신체기능도 약화
장애·부상 완쾌율도 긍정적 노인늘이 44%나 높아
나이에 관한 전형적인 관념의 내용물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이제까지 나온 연구결과에 따르면 노년기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노인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늙는다는 것은 쓸모가 없어지고, 무력해지며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는 식의 부정적 고정관념을 지닌 노인들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예방 차원의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대체로 일찍 사망하며 기억상실과 신체기능 쇠퇴를 겪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노년을 지혜와 자기실현, 만족 등 긍정적인 관념과 연결시키는 노인들은 부정적 사고에 물든 동년배들에 비해 건강하고 신체기능 역시 훨씬 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 의학협회 저널에 실린 보고서는 긍정적 성향을 지닌 노인들이 질환이나 부상으로 인한 장애에서 완쾌될 확률이 부정적 나이 관념을 가진 노인들에 비해 44%나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런 연구 결과가 노인들을 돌보거나 이들과 자주 소통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노인을 향한 그들의 태도가 좋은 방향으로건 나쁜 방향으로건 ‘나이 전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행간에 담긴 메시지다.
예일 대학교 역학 및 심리학 부교수인 베카 레비 박사는 1990년대 중반, 나이에 관한 전형적 관념이 노인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한 일련의 실험을 실시했다.
레비 박사는 실험실에 이들을 모아놓은 뒤 나이와 관련한 긍정적인 단어와 부정적 단어를 연속적으로 컴퓨터 화면에 내보냈다.
화면 전환속도는 노인들이 모니터를 스쳐가는 단어 하나하나를 의식적으로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이는 참가자들을 나이에 관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고정관념에 무의식적으로 노출시키기 위한 장치다.
그 다음 단계로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짤막한 글쓰기와 걷기 같은 간단한 작업을 하도록 요청했다. 그 결과 ‘노쇠’ 등 부정적 단어를 무의식으로 받아들인 노인들은 ‘지혜’와 같은 긍정적 단어에 반응한 노인에 비해 필체가 어지러웠을 뿐만 아니라 걷는 속도도 떨어졌다. 또 심혈관 스트레스 수준이 높게 나왔으며 대다수가 생명연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진료를 거부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처럼 외부 자극을 동원한 실험이 아니라 노령과 관련한 사람들의 주관적 경험에 관심이 있었던 레비 박사는 1975년부터 1998년에 이르는 23년간 오하이오주 옥스포드의 50세 이상 주민들을 대상으로 작성된 데이터를 찾아냈다.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연구가 시작된 1975년 당시 나이에 관한 고정관념을 알아내기 위해 작성된 질문지에 답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게 점점 엉망이 되어간다”라거나 “나이를 먹을수록 쓸모가 없어진다”와 같은 문항에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하는 식이었다.
참가자 660명의 답변을 분석한 레비 박사는 나이에 대해 긍정적 고정관념을 지닌 사람이 부정적 고정관념을 지닌 사람에 비해 평균 7.5년을 더 살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대해 레비 박사는 노령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삶에 대한 의지가 상대적으로 더욱 강력하고, 이것이 노년기에 수반되는 어려움에 적응하는 능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추측했다.
또한 부정적 ‘나이 전형’을 지닌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취약성을 보였고 전반적인 건강상태도 반대 성향의 동년배에 비해 떨어졌다.
레비 박사는 동일한 데이터를 이용해 긍정적 고정관념을 지닌 노인들이 균형 잡힌 식사와 운동을 하고 음주를 자제하며 담배를 멀리하고 의료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노년기를 ‘바른 생활’ 모범생으로 지내다보니 신체기능 수준이 부정적 성향의 고정관념을 지닌 동년배에 비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레비 박사는 나이에 관한 긍정적 고정관념이 더 큰 자기 통제감과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고양된 자기효능 의식을 가져오는 것으로 추정했다.
레비 박사는 또 1998년부터 2008년까지 70세 이상의 노인 5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을 통해 나이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지닌 쪽이 병과 부상으로 인한 일상적 활동장애에서 완쾌되는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이에 대해 국립노화연구소의 부소장으로 노인병 전문가인 마리 버나드 박사는 “레비 박사의 연구 결과는 대단히 흥미로우며 지난 30년간 개업의로 활동하면서 행한 나의 임상적 관찰과도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연구에 참여한 표본 집단이 크지 않기 때문에 반복실험을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버나드 박사는 “우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고정관념의 작동방식에 관한 이해”라고 강조했다. 고정관념을 정말 바꿀 수 있는 것인지, 변경이 가능하다면 생명을 연장한다거나 건강한 삶을 사는데 이를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대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만연된 청년 지향적 문화의 영향으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연령차별을 차단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듀크대학의 심리학 및 신경과학과 객원 조교수인 다나 코터-그루엔은 “어린 아이조차 노인은 골골대고, 느려터진데다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는 무용지물이라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며 “이런 편견을 털어내기 위해선 여러 세대가 한데 어울리며 늙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경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레비 박사도 “우선 노인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사람들부터 노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보강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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