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재외투표 첫 날인 5일 LA 총영사관에는 대선에 참여하겠다는 일념으로 바쁜 일정을 뒤로 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또는 장거리 운전을 하고 투표소를 찾은 한인 유권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상 첫 대선 재외투표인데 소중한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며 투표에 의미를 부여했다.
“신성한 주권행사”한마음, 옷매무새도 다듬어
폐암 말기 환자와 시각장애인 발길엔 숙연
제빵 복장 한인 투표 후 분주히 다시 일터로
■한복 입고 투표
“신성한 주권 행사인데 당연히 한복 입어야죠”
투표 첫 날일 5일 오전 10시께 남편 이상황(76)씨와 함께 투표소를 찾은 이정욱(74)씨는 전통 의상인 한복을 다소곳이 차려 입었다. 붉은색 마고자에 예쁘게 장식된 지갑을 손에 쥔 이정욱씨는 1,000명 넘게 투표한 이날 유권자 가운데 거의 유일한 한복 차림인 만큼 대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씨는 “투표라는 게 신성한 주권의 행사라고 생각한다”며 “더구나 이국땅에서 처음으로 모국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만큼 복장에서도 최고의 예의를 갖추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한복을 꺼내 입었다”고 말했다. 넥타이를 매지는 않았지만 단정한 수트 차림으로 투표를 마친 남편 이상황씨는 “미국에서 아내와 함께 투표할 수 있어 감격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제빵일 하다 투표
“외국생활 하면 더 애국자 되는 것 같아요”
LA 한인타운에 있는 한 베이커리에서 근무하는 김두길(57)씨는 제빵 일을 하다 투표하기 위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투표소를 찾았다. 흰색 바탕의 제빵사 복장을 한 채 투표소를 찾은 김씨는 “외국 생활을 하게 되면 누구나 다 애국자가 되는 것 아니냐”며 반문한 뒤 “한국에서보다 더 애국자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재외선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렇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떤 후보에게 투표했느냐는 물음에 “도덕성을 기준으로 판단했다”고 말한 뒤 베이커리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각장애인도
“앞은 보이지 않지만 주권은 꼭 행사해야죠”
시각장애인 송재욱(55)씨도 투표 첫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시각장애인용 검정색 안경과 기다란 안내 지팡이에 의지한 채 투표소에 입장한 송씨는 접수대에서 본인 확인을 거쳐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발부받았다. 송씨는 이 과정에서 본인 확인을 위해 잠시 검정색 안경을 벗기도 했다.
송씨는 이어 박상덕 행정원의 안내로 기표소로 향했고 기표소 안에서도 직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기표를 마친 뒤 투표함에 회송용 봉투를 집어넣었다. 송씨는 “투표소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지만 국가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투표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폐암 말기 환자도
“내 생에 마지막 투표일수 도…”
오문환(59)·김충실(56) 부부는 선관위 직원과 이들을 취재하던 기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폐암 말기의 아내 김씨가 탄 휠체어를 남편 오씨가 밀고 투표소에 들어선 뒤 부부가 함께 기표소에서 투표를 마쳤기 때문이다.
몸을 가누는 것은 물론 의사소통조차 쉽지 않은 김씨를 대신해 인터뷰에 나선 남편 오씨는 “아내가 2년 전 폐암 판정을 받아 산소호흡기에 연명해 겨우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며 “아내가 꼭 투표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이렇게 투표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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