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쯤 처음 미국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느꼈던, 새로 태어난 듯한 충격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참 숨 막혀 있다가 깨끗한 공기를 한꺼번에 들이 마시는 듯 가슴 깊이 시원했고, 갑작스레 달린 날개로 끝없이 넓은 상상의 하늘을 훨훨 나는 듯한 정신적 자유를 만끽했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다니는 동안, 선생님이 수업의 중심이 되어 주제를 뽑아 가르쳤고, 우리는 선생님의 요구에 맞춰 주입식으로 그리고 복종적으로 공부했다. 그 가르침에 이견을 내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미국 대학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 교수 쪽을 바라보며 하는 수업도 많았지만, 학생들이 동그랗게 앉아 서로를 보면서 토론하는 수업도 많았다. 교수들은 학생 모두의 창의적 의견을 끌어내려 애썼고, 학생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교수의 논리나 의견을 반박했다. 교수들은 그 반박을 즐기면서 학생들과 평등한 입장에서 토론을 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미국대학 교육이 가장 이상적인 교육법이라 믿어버리고 말았다.
그 참신했던 대학생활을 통째로 즐기지는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익숙하지 못한 환경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창의적 의견을 제시하려 애썼지만 나는 결코 조용한 아시안 학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언어에도, 창의력에도, 교수 면박주기에도 자신이 없어서 입에서만 우물거리기 일쑤였고 정작 그걸 다른 학생이 발표한 후 교수의 칭찬을 한껏 받은 날엔 밤잠 이루기가 힘들었다.
진정한 지식이 신선하고 자유롭게 지켜지는 상아탑만 같던 미국대학의 참신함은 몇 년 후 대학생활을 마칠 무렵 조금씩 다르게 보였다. 주어진 자유를 남용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실력없는 교수를 대놓고 면박주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부해오지 않은 학생들이 말발로 억지를 쓰면서 교수의 가르침을 반박하거나, 강의준비 안한 교수들이 학생끼리 토론하도록 유도하면서 내용없는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업 후 주제에 대한 결론이 없어서 허전하기도 했다.
이어 나 자신이 미국 대학 강단에 서서 교수의 입장까지 경험하고 나니 마침내 한국과 미국 교육체제의 장단점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교육의 유교적 일부와 미국 교육의 지적 자유체제를 반쯤씩 적당하게 섞으면 가장 이상적인 교육일 것 같은 평범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지난 주 우리 대학에서 켄터키와 오하이오의 교육가 100여명의 모임이 있었다. 강사는 오리건 대학 교육대 교수인 중국계 미국인 차오(Yong Zhao) 박사로, 그는 20권의 저서와 100여개의 교육관련 논문을 발표하여 미 교육계에서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미국이 많은 예산을 소모하면서 쓸데없이 질 낮은 테스트 제도에만 집착한다며, 중국처럼 실제적 실력향상을 위해 목적을 높이 세운 후 학생들을 독려하면서 창업자로서의 자질을 키우도록 단련시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참석자들은 그가 설명하는 유교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현 중국교육에 귀를 기울이더니 신선하고 파격적이라며 미국교육계가 참고해야 할 사항들이라고 흥분했다. 그의 제안은 현재 많은 미국 교육가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현재 미국은 교육계는 물론 일반가정에서도 아시아식 교육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특히 작년에 출판된 중국계 에이미 추아의 ‘타이거 엄마의 전송가’에서 보여진 교육방법들은 너무 혹독하고 비인간적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느슨한 자녀교육법을 스스로 비평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미국이 중국교육을 미국교육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은, 한국, 일본, 중국의 일반학교 특히 대안학교들이 서양식 교육을 접목시키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내가 신기루를 보듯 잠깐 보았던 진정한 지식 교육의 장이 세계 곳곳에서 열려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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