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시작
비실용적 학문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몇 년 전 SUNY-알바니가 불어ㆍ이탈리아어ㆍ러시아어ㆍ 고전학ㆍ연극학을 폐쇄했고, 지난 주에는 에모리 대학이 학부의 미술ㆍ저널리즘ㆍ교육ㆍ체육 전공을, 대학원의 경제ㆍ스페인어 전공을 없애고, 부속기관인 리버럴 아츠 연구센터의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의 존속을 위해 실용적 학문에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윤추구 기업으로 전락되고 직업 양성소로 변질된 대학에서는 인문학이나 예술분야가 가장 쓸모 없는 것으로 낙인 찍히지만, 캠퍼스 밖 세상은 그 반대다.
스테이트팜 보험회사의 CEO에드워드 러스트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우리는 지원자의 재정 혹은 보험 지식을 테스트 하지 않는다. 그들의 비판적 사고력, 글발, 말발 그리고 글로벌 시사감각을 알아본다”고 귀띔했다.
구글의 채용담당자는 “올해 6,000명을 고용했는데 그 중 4,000명은 인문학 전공자들”이라고 말했고, 같은 구글의 엔지니어링 디렉터 호러비츠는 “테크놀로지를 접고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따라 인문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따라. 그러면 기업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요소를 섭렵하게 되고, 그들이 기필코 모시고자 하는 인재가 된다”고 조언했다.
포춘500리스트에 오른 회사들의 CEO 40%가 리버럴 아츠를 전공했고, 인문학 배경을 가진 사원들이 중견이나 고위직으로 진급하는 속도가 이공계 혹은 비지니스 전공자보다 높다는 통계와 맞물리는 조언이다.
고대 로마가 몰락한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실용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교육에 있다. 세력확장을 위해 전쟁ㆍ법률ㆍ의술ㆍ정치ㆍ농사 기술 등 실용 학문에는 주력했지만, 체육ㆍ무용ㆍ음악ㆍ과학ㆍ철학의 중요성은 간과했다. 고대 로마 교육의 전반적인 내용은 당시 장군이자 정치가인 카토가 말한 “훌륭한 시민에게는 실용적 지식 이외의 그 어떤 지식도 필요치 않다”는 말에서 읽을 수 있다.
실용주의를 바닥에 깐 미국 교육도 로마의 것과 흡사하다. 그것은 왜(why)를 정립하려는 철학이 아니라 수단(how)을 찾아내 현재를 만족케하는 결과 숭상주의다.
대학에서 설립 목적 같은 이념은 뒷전으로 제치고, 기여도가 높을 신입생을 선발하여 돈 되는 전공 과정을 거치게 한 뒤 배출하면 기부금이 얼마나 들어올까라는 계산에 바쁜 것이 좋은 예다.
대학이 실용성에만 의존하는 경영위주로 간다면 고대 로마가 겪은 결말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역사학자 모리스 버만은 “로마시대와 마찬가지로 일말의 책임감이 없는 엘리트들과, 먹을 것과 오락거리만 있으면 만족하는 어리석은 대중으로 점철된 미국은 쇠망으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했다.
상업주의 광란이 판치고, 비판적 사고와 의식수준이 바닥을 치고, 문화는 가볍고 타락하여, 정신적인 죽음이 널브러진 사회에서는 누가 개인을 각성시키고 인도해야 할까. 그것이 대학의 목적과 임무가 아닌가. 그렇지만 문화 붕괴의 최종 방어선 혹은 치료제라고 할 수 있는 대학마저 실용성 일변도로 달려간다면 그 사회의 파산선고는 따놓은 당상이다. 우매한 대중에게서나 나타나는 쓰레기와 진정한 가치를 헤아리지 못하는 무분별력이 대학 캠퍼스에 등장한 것은 비극의 시작이다.
이민 1세는 노동과 사업에 땀을 흘리지만, 2세에게는 의사ㆍ변호사ㆍ엔지니어ㆍ교수 같은 전문직을 추구하게 하고, 2세는 그 다음세대에게 시 쓰고, 그림 그리고 연주하기를 원한다. 실용적인 기술교육 덕택으로 일자리를 얻어 살아보지만, 일의 결국이 건조한 삶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메마르고 어찌할 바 모르는 삶, 그 비극의 치료제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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