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조’ 못하고도 또 변화 강조
같은 주제를 사람에 따라 달리 표현
정치인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내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건 아닌지’ 하고 스스로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대통령 후보라면 더 그래야 할 것이다. 과거에 한 말과 지금 한 말을 비교해 따지는 언론매체가 있기 때문이다.
`기억이 잘 안 난다’는 상투적 발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다간 유권자에게 실망만 안겨 줄 수 있다.
미국 대선 후보들이 최근 일구이언(一口二言)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재선에 도전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일 플로리다에서 열린 미국 내 최대 스페인어 방송 `유니비전’에 출연해 히스패닉(중남미계 이민자) 유권자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오바마는 대통령 재임 중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 "(백악관) 내부에서 워싱턴(중앙 정치)을 바꿀 수 없다. 외부(유권자)에서만 바꿀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오바마가 4년 전 외쳤던 `희망과 변화(hope and change)’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당시 `내가 대통령에 당선하면 워싱턴을 개조(remake)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거의 같은 시간에 플로리다의 다른 장소에서 유세하고 있었던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오바마 발언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부가 제대로 일하지 못하게 한 데 대해 오바마가 백기 투항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과 오바마 캠프는 오바마가 워싱턴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을 시인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국민에게 변화를 완성하도록 단합을 촉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오바마가 변화를 변화시킨다(Obama changes `Change)’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가 기존 입장을 현저히 뒤집고 워싱턴 개조에 실패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고 꼬집었다.
롬니도 일구이언에선 오십보백보다.
롬니는 지난 7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민단체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초청 연설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이 겪은 고충과 차별을 지적하면서 "우리는 여러분을 소외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2008년 오바마 당선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여전히 많은 장벽이 남아 있고 과거의 불평등은 지속하고 있다", "만성적인 경제난은 모든 이를 어렵게 하지만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는 더 그렇다"는 등의 발언으로 인정이 풍부하고 평등을 중시하는 인상을 줬다.
그런데 롬니는 불과 몇 주 전에만 해도 NAACP 발언과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지난 5월 플로리다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행사에서 미국민 절반가량(47%)을 ‘정부 의존형 인간’으로 비하하고 이들 저소득층은 오바마를 지지할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참석자들은 1인당 5만달러를 내고 이 행사장에 들어왔다.
이 발언을 담은 동영상이 지난 17일 공개돼 롬니는 호감도와 지지율에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롬니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한다’(Romney speaks out of both sides his mouth)라며 그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은 스타일도 문제이지만 손바닥 뒤집듯 같은 주제를 놓고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권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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