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은 수명연장 효과를 내지는 않지만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 ‘소식은 장수’ 뒤집는 새 주장 제기
“소식하면 장수한다”는 주장은 그리 낯설지 않다.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실험결과도 이미 여러 건 발표됐다. 그런데, 최근“적게 먹으면 오래 산다”는 통설을 뒤집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네이처’의 온라인판에 게재된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국립보건원(NIH) 동물센터 원숭이들에게 정상적인 식사량의 70%에 해당하는 먹이만을 제공하며 20여년을 지켜보았으나 수명연장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년 간 원숭이 실험 결과 수명연장과 무관 밝혀져
암 발병률·당뇨·콜레스테롤 수치 등은 크게 감소
외모의 노화도 늦춰…‘건강한 삶’연장은 증명한 셈
NIH 원숭이들은 수명 연장 효과도 얻지 못한 채 거의 평생 동안 뿌듯한 식후 포만감을 맛보지 못한 셈이다. 원숭이는 태어난 뒤 4~5년이 지나면 성년이 되고, 자연이 아닌 갇힌 환경에서 평균 27년을 산다.
NIH의 장기 연구에 발탁된 원숭이들의 입장에서는 ‘재수 꽝’의 제비를 뽑아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이 얻은 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20여년의 강요된 ‘절식수행’을 통해 추가 수명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건강증진’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적게 먹는 그룹에 편입된 원숭이들의 암 발병률은 포식하는 집단에 소속된 동류에 비해 현격하게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NIH의 연구 결과는 지난 75년에 걸쳐 꾸준히 제기된 ‘소식 장수’의 공식에 찬물을 끼얹었다.
쥐를 이용한 이전의 실험에서는 일일 칼로리 섭취량을 정상 수준에 비해 30~40% 낮출 경우 평균 수명이 15~40%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오자 과학자들은 언제가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세를 넘어서는 명실상부한 ‘장수시대’가 열릴 것이고 식사량 조절이 그 열쇠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쥐를 비롯한 설치류에게서 효과를 보인 ‘소식 장수’의 비법은 무슨 영문인지 영장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소식의 생활화’를 통해 ‘저승사자’와의 대면시간을 늦추려 노력해 온 많은 사람들로서는 맥 빠질 노릇이다.
물론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가 이전의 연구 결과를 모두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단지 20여년에 걸친 실험을 통해 도출한 무시하기 힘든 과학적 결론으로 인해 정설로 굳어져 가던 ‘소식 장수’론이 중대한 도전을 받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노인학 및 노화 전문가로 NIH의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선임 연구원 라페엘 데 카보는 “이번 연구에서 우리는 건강수명과 평균수명의 분리를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건강수명이란 말 그대로 인간의 한 평생 중 건강이 받쳐주는 기간이다.
데 카보는 “이번 연구에서 건진 소득은 건강과 장수가 반드시 손에 손을 잡고 전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원숭이를 이용해 장수와 소식 사이의 연관관계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9년에도 위스콘신 집단 방사지역의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연구가 진행됐다.
하지만 그 결과는 NIH 실험에서 도출된 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위스콘신의 원숭이들은 당뇨병, 암과 심장질환 등 노화와 관련한 질병들로 인한 사망률이 식사량에 제한을 받지 않는 다른 원숭이들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화 관련 질병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망 원인들까지 함께 고려해도 ‘소식 원숭이’들의 평균수명은 포식 원숭이에 비해 높은 경향을 보였다.
데 카보는 다이어트와 유전자 구성, 혹은 이들 외의 다른 요인들 가운데 무엇이 두 연구 결과의 차이를 초래했는지 알아내는 것이 소식과 노화의 상관관계와 작동방식을 알아내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NIH의 원숭이 실험은 1987년에 시작됐다. 실험에 동원된 121마리의 레서스 원숭이들은 35마리의 16~23년생 ‘노인 원숭이’ 그룹과 최고 14년생까지의 ‘젊은 원숭이’ 그룹으로 나뉘었다.
두 무리의 원숭이들은 다시 낮시간에 원하는 대로 먹이에 접근할 수 있는 ‘포식파’와 실험이 시작되기 이전 식사량의 70%만을 배급받는 ‘소식파’로 세분됐다.
실험과정에서 나이든 그룹에 속한 원숭이들은 식사량에 관계없이 사망 연령에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평균수명을 넘겨 살았다.
음식 공급이 제한된 늙은 원숭이들 가운데 네 마리, 무제한 식사를 하는 원숭이들 가운데 한 마리가 40세를 넘기며 기존의 원숭이 장수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두 연구결과를 정리하면, 위스콘신의 실험에서는 식사량 제한을 받는 원숭이의 13%만이 나이 관련 질병으로 죽었지만 포식 원숭이들의 경우 이 비율은 37%에 달했다. 식사량과 노화 사이의 연관성이 어느 정도 드러난 셈이다.
반면 NIH 연구에 참여한 나이든 원숭이들은 식사량과 노화와 관련된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에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나 소식에 따른 뚜렷한 건강효과를 나타냈다.
NIH 원숭이들은 위스콘신 원숭이들에 비해 ‘때깔’도 고왔다.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보였고 암 발병률도 현저하게 낮았다.
보이지 않는 대사성 건강도 NIH 원숭이 그룹이 단연 앞섰다. ‘원로파’의 경우 NIH 원숭이들의 중성지방과 포도당 수치가 훨씬 낮았고 콜레스테롤 역시 국립보건원의 소장파와 노장파 모두에게서 낮게 나왔다.
그리고 이 같은 차이를 보인 원인은 이들에게 공급된 음식물의 차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됐다.
위스콘신 원숭이들의 먹이는 당분 함유량이 높은 정제사료였다. 연구에 동원된 무제한 자유 포식파 원숭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당뇨병에 걸린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에 비해 NIH 원숭이들에게는 식물 미량영양소와 오메가-3 지방산 함유량이 높은 천연소재 먹이가 주어졌다. 그리고 먹거리의 차이로 인해 NIH 원숭이들은 식사량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건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얼마나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먹느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샌안토니오 소재 텍사스대 헬스 사이언스 센터의 노인병 전문가 스티븐 아우스타드는 “건강과 장수는 같은 것이 아니다”며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비교적 오래 건강하게 살다가 적절한 시점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건강과 장수가 한 묶음으로 움직이지 않는 게 확실하다면 이는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악화된 건강상태로 목숨 줄을 이어가는 것이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긴 건강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장수는 차라리 저주다. 소식이 설사 장수와는 상관이 없다 해도 확실한 건강효과를 보였다는 연구결과는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