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로하신 부모님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뵐 수 있을까 하여 매년 한국을 방문한다는 내 말은 한국을 즐기고 싶은 내 욕구를 포장하는 이유에 불과 한 것 같다. 가끔씩 감기 몸살을 앓긴 하셔도 아직은 두 분 다 아주 건강하신 편이니까.
어쨌거나, 이번에도 그런 핑계로 한국에 왔다. 매년 올 때마다 한국의 새로운 것들을 보며 낯설기는 했어도 곧 그런대로 적응할 수 있었는데, 이번처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적응하기 힘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열흘 쯤 머물고 있는 지금까지 그동안 듣고 보았던 많은 것들이 아직 낯설기만 하다. 음식조차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많아 어리둥절했지만 호기심으로 적응하고 있는데, 역시 먹던 음식에 대한 향수가 일어 옛 음식을 찾아 나서고 있다.
마침 LA에 사는 두 동생도 한국 방문을 하게 되었다. 동생들은 들러야 할 식당의 리스트까지 이미 미국에서 작성해 갖고 올 정도로 미식가들이어서 우리는 시간 날 때마다 함께 식당을 찾아 나서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덕분에 맛의 즐거움을 배로 느낄 수 있게 된 우리들은 호들갑을 떨며 신당동 떡볶이, 장충동 족발, 오장동 냉면, 이천 쌀밥, 춘천 막국수와 닭갈비 등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 동네들의 식당가에 도착하면 같은 음식을 만드는 식당들이 수도 없이 많아 우린 도대체 어떤 집에서 먹어야 할지 우왕좌왕 한다. 식당마다 ‘원조’라고 쓰인 커다란 사인과 함께 모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주인들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TV 맛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식당들이 그 맛 때문이 아니라 뇌물 혹은 인간관계 때문이었다는 것을 밝혀졌는데도 사진들은 여전히 당당하게 걸려 있다.
대개 느낌이 좋은 식당, 혹은 사람이 많은 식당을 골라 들어갔는데, 외국인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혀는 적당히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충동에선 주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님 없는 텅 빈 ‘원조’ 족발집에 들어가야 했다. 그곳에서 우리 모두는 그 ‘원조’ 족발이 ‘가짜’ 족발임에 동의했다. 절편처럼 썰어서 족발 뼈 위에 죽 펴놓았던 고기와 돼지껍질이 틀림없이 족발 아닌 수육 맛이었던 것이다. 역시 모르는 식당에 갈 때는 사람이 많은 곳을 택해야 함을 확인했다.
매일, 아침부터 중대 뉴스인양 뉴스 시간대에 보도되는 연예 뉴스는 매해 겪는데도 적응이 안 된다. 작년 보다 그 시간이 길어진 것도 같다. 친지들로부터, 한국인이면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류 K팝 가수들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고 타박 받을 때도 많다. 어쩌란 말인가? 내 사는 곳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을 모르는데. 나는 연예인들을 우상화시키고 그들의 활동을 과대 포장하여 보도하는 미디어를 탓하고 싶다.
미 중서부의 우리 대학 한국어 클래스 학생들의 ‘K팝 사랑’을 보노라면 한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숫자가 불과 10여명에 불과하여서 한류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은 과장에 지나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사실 ‘한류의 전세계화’라면 태권도를 손꼽아야 한다. 동양무술이라고 하면 이미 몇 해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가라데’ 대신 ‘태권도’가 그 동일어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1960년대 말부터 정부 차원에서 전 세계에 소개되기 시작하여 20년 동안의 안정종목과 시범종목을 거쳐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는 정식 종목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정부와 수많은 한국인 사범들의 노력 끝에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도 태권도를 만나게 되었으니, 태권도가 바로 한류의 ‘원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젊은 음악인들처럼 잠깐 반짝였다 사라지지 않을 그 긴 생명의 한류가 국내에서는 거의 무시되고 있음이 안타깝다. 정부 차원은 물론 민간인 차원에서 그 사실을 최소한 제대로 전달, 보도하여 국민 모두가 한류의 진짜 ‘원조’를 오랫동안 함께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김보경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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