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도중 피렌체 역에서 ‘시에나’행 기차를 탄 적이 있다. 그런데 출발시간 즈음해 열차 내 방송에서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말하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옆 플랫폼에 있는 ‘그로세토’행이라고 쓰인 열차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말이 안 통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대전행 열차를 탔다가 부산행 열차로 바꿔 탄 것이다. 그러니 중간에서 내리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며칠 전 이탈리아 크루즈 여객선 코스타 콩코르디아가 지중해에서 좌초되어 타고 있던 한국인 관광객 32명이 극적으로 탈출했는데 신혼여행 중인 한기석씨(29) 부부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24시간 갇혀 있다가 구출되어 BBC-TV에 톱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한기석씨 부부는 왜 탈출하지 못했을까. 바로 언어장벽 때문이었다. 선원이 방문을 두드리며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소리치고 갔는데 한씨가 알아듣지 못해 마음 놓고 있다가 몇 시간 후 배가 기울자 그때서야 탈출을 서둘렀다. 그러나 복도의 경사가 급해진데다 정전이 되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구출된 미국 관광객들에 의하면 구명보트를 탈 때도 이탈리아어로 설명하는 바람에 대혼란이 일어나 승객들 간에 싸움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5일 현재 사망자는 15명으로 늘어났으며 행방불명이 18명이다. 어떻게 21세기에 11만톤이나 되는 콩코르디아와 같은 호화 여객선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 미국과 영국신문들은 이번 크루즈사고를 ‘Unbelievable(믿기어 지지 않는)’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선장과 승무원은 승객들이 아직 배에 남아있는데도 먼저 탈출해 버렸다. 사고 원인은 더 기가 막히다. 질리오라는 섬에 마리오 팔롬보라는 이 여객선의 전임 선장과 헤드웨이터의 가족들이 살고 있어 이들에게 Salute(고동을 울리며 항해하는 것)를 하려고 좀 더 가까이 접근하려다 섬의 바위에 좌초된 것이다. 더구나 세티노 선장은 선장실을 방문한 여자승객들과 잡담을 하다 레이더를 제대로 못 봤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결국 선장이 한눈팔다 엄청난 사고를 낸 것이다. 이 내용은 선장에 대한 법정신문과정에서 목격증인들에 의해 밝혀진 내용이다.
100년 전에 일어난 타이태닉 참사에 비하면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사회는 너무나 멋이 없는 ‘나 혼자만의 사회’다. 타이태닉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끝까지 승객탈출을 지휘하다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스미스 선장은 구명보트 탑승 우선순위를 어린이와 여성들에게 두었다. 그 다음 자리가 있으면 남자들이 타는 것으로 정했다. 왜냐하면 당시 타이태닉의 승객은2,200명이었으나 구명보트(20개)는 1,180명밖에 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1등과 2등 객실의 남자 97퍼센트가 보트를 포기한 반면 여성승객은 75퍼센트가 살아 남았다. 숨진 남자승객 가운데는 당시 미국에서 재벌로 꼽히던 존 애스토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장렬한 최후를 마친 사람들은 최후까지 찬송가를 연주한 밴드멤버 8명이었다.
인간애 그윽한 감동적인 스토리다. 스미스 선장의 고향인 영국의 리치필드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동판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그는 용감한 영웅이었다. 그리고 가장 영국인 다웠다”.
유럽에서는 지금 콩코르디아의 추하기 짝이 없는 세티노 선장 재판에 온 눈이 쏠려있다. 이 재판은 선장 잘못 만나면 얼마나 불행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표본에 속한다. 책임감 없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니다. 게다가 능력마저 없으면 그를 따르는 내 팔자마저 비참해 진다. 무능한 지도자가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를 코스타 콩코르디아의 참사가 보여주고 있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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