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을 보고 “나는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여자는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남자는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행복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란 여성을 소재로 한 영화중에 ‘소라야에게 돌을 던지다(Stoning Soraya)’라는 것이 있다. 남편이 젊은 여자를 얻기 위해 부인에게 간통혐의를 씌워 마을사람들이 돌을 던지도록 하는 내용인데 그 처벌이 너무 잔인하고 비참해 가슴이 뛸 정도다.
아내를 구덩이에 묻어놓고 얼굴만 내놓게 한 다음 마을사람들이 차례로 돌을 던지는데 제일먼저 아들과 남편이 던진다. 여자가 아무리 변명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마을주민들은 남편의 말만 믿고 돌을 던져 사형을 집행한다. 이 영화는 호메이니 회교혁명이 일어난 후 어느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풍습을 프랑스 기자가 취재하여 영화화 한 것인데 보고나면 “여성들이 이란에서 태어나지 않고 한국이나 미국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지난달 김정일이 죽었을 때 그의 초상화 앞에서 통곡하며 28세밖에 안된 김정은을 ‘위대한 지도자’라며 떠받드는 북한남자들을 보고 “나도 북한에서 살고 있으면 저렇게 되었겠지”하는 생각과 함께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느낀 적이 있다.
몇 달 전 가까운 친척 한사람이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받다가 체내에 종기가 발견되어 “암일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쇼크를 받은 나머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외부접촉도 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세포조직 검사 결과 암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그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너무나 행복하다”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여기서 우리는 행복의 본질을 짐작할 수 있다. 행복은 느끼는 것(feeling)이다. 어느 만큼 만족해야 행복이라는 정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따라서 어떤 그릇에 담느냐가 중요하다.
행복은 기대와 반비례 한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행복을 느끼기 힘들다. 예를 들어 연말에 300퍼센트 보너스를 받던 직원이 지난 12월 100퍼센트 밖에 못 받았다면 그는 전혀 행복하지가 않다. 반면 전혀 보너스를 기대할 수 없던 회사에서 100퍼센트가 나왔다면 직원들은 행복해 할 것이다. 기대는 행복감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다. 바람이 작을수록 행복해지는 그릇이 커진다.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한다. 작은 것에 감사할수록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어린이에게 비싼 장난감을 사주어 보라. 점점 더 비싼 것을 사달라고 졸라대기 마련이며 부모의 친구들이 웬만한 장난감을 들고 가도 만족하지 않고 불평만 한다. 기대가 크기 때문에 행복을 담는 그릇이 작아진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나 불행을 느끼는 것은 훈련이 필요 없지만 행복을 느끼는 데는 훈련이 필요하다. 행복해져야겠다고 마음 먹는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의 훈련이 없으면 기대가 높아져 웬만한 일에도 행복해 하지 않는다. 종교인들이 식사하기 전에 기도하는 것은 작은 것에 감사하는 훈련의 본보기다.
행복을 담는 그릇의 사이즈를 크게 하면 운명도 달라진다. 인간의 운명이 어떤 것인가는 자신이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의해 결정되기 되기 때문이다.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 새해 결심의 대상이며 새해 숙제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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