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대통령은 고깔모자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특별방송을 예고했던 12월19일(한국시간) 오전 청와대에서는 고깔모자를 쓴 참모들에 둘러싸인 이 대통령 내외가 떠들썩한 축하파티를 진행 중이었다. 이날 이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의 출근과 동시에 기다리고 있던 청와대 직원 200여명(이중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직원들도 있었다)은 생일ㆍ결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이 대통령 내외를 축하했다고 한다.
사실 12월19일은 이 대통령에게는 그냥 넘기기 힘든 뜻 깊은 날이었다. 71번째 생일이었으며, 또 김윤옥 여사와의 41번째 결혼기념일이었고, 4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날이기도 했다. 물론, 파티는 오래가지 않았다.
국가 안위에 메가톤급 급변 상황을 몰고 올 수 있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특별방송을 앞둔 엄중한 상황을 두고 대통령이 자신의 생일축하 잔치를 벌이는 이 헛웃음 나오는 촌극 앞에서 미국 사는 재외국민조차 어찌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가. 김 위원장 사망 사실을 몰랐던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으로 이틀 동안이나 나라를 비우기조차 했으니 참으로 아찔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북 정보를 총괄한다는 국가정보원은 어찌했나. 국회에 출석한 국정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사실은 국정원도 북한 발표 이전에 몰랐다”고 실토했다. 1조원이 넘는 예산을 대부분 북한 정보 수집에 사용한다는 국정원이다. 올해 국정원 예산은 특수활동비 명목 5,000억원과 예비비 3,000억원에 더해 알려지지 않은 예산을 더하면 1조원이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 많은 예산을 북한 정보 수집에 사용하는 국정원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특별방송이 예고됐던 19일 오전 10시부터 12시 발표시점까지 2시간은 이 정부의 안이함과 무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통일부는 북한이 특별방송을 예고하자 “6자회담 관련 소식이나 후계 구도에 관한 내용이지 않겠느냐”고 추측했다고 한다.
북한의 특별방송 예고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가 유일한 전례였음에 비춰 김 위원장의 유고 상황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 위원장 사망 정보에 먹통이었던 이 정부가 특별방송 예고조차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었다는 이 참담함은 어찌 감출 것인가.
하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이 엄중한 한반도 급변 상황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것,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최우선에 두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관리하는 것,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김상목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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