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끊임 없이 반복되는 미국생활에 서 스포츠를 벗 삼아 살아가 는 많은 LA 한인들에게 올 가을은 예년에 비해 다소 맥이 빠지게 느껴질지 모른다. 계절적으로 지금은 원래 스 포츠팬들에게 1년 중 가장 흥분되고 기대되는 시간이어 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 하기 때문이다.
항상 이맘때는 메이저리 그 플레이오프와 월드시리 즈, NFL과 대학풋볼, 그리고 시즌 개막 카운트다운에 들 어간 NBA의 레이커스와 클 리퍼스에 대한 기대가 겹쳐 스포츠팬들에게는 흥분감을 안겨줬다. 거기에 유럽 축구 의 열기와 그 무대에서 뛰는 태극전사들의 활약상이 보 태지면 한인 스포츠팬들에 겐 단연 연중 최고의 시간이 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여러 사정 으로 전혀 그 같은 열기를 느끼기 어렵다. 우선 NBA는 리그와 선수간의 노사협상 이 타결되지 않아 자칫하면 개막 카운트다운 대신 시즌 취소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까지 느끼게 하는 상태다. 가을야구 무대에선 LA팀인 다저스 와 에인절스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가운데 텍사스 레인저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월드시리즈에서 흥미만점의 접전을 펼쳤지 만 사상 최저의 시청률이 말 해주듯 팬들의 시선을 붙잡 지는 못했다. LA 풋볼열기를 주도해온 USC와 UCLA도 신통치 못하다. USC는 징계를 받아 보울게임에 나갈 수 없 고 UCLA는 성적 부진으로 감독이 경질될 위기에 놓여 있다.
게다가 유럽축구 무대에 선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 티드)과 박주영(아스날), 지동 원(선덜랜드)이 모두 주전경 쟁에서 밀려있고 이청용(볼 턴)은 프리시즌 경기에서 다 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 바람에 아예 필드에 서지도 못하고 있어 한인 팬들을 우 울하게 해왔다.
이런 와중에 두 달전 아 스날 이적 후 벤치만 지키던 박주영이 마침내 날개를 펴 기 시작한 것은 한인 팬들에 게 너무도 반가운 소식이 아 닐 수 없다. 박주영은 25일 볼턴과의 칼링컵 16강전에서 환상적인 역전 결승골을 뿜어내며 단숨에 아스날 팬 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로빈 반 페르시 외에 뚜렷한 골잡이가 없어 고민하던 아 스날은 환상적인 피니시를 보여준 박주영의 등장에 거 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많은 아스날 팬들은 박 주영의 골이 2000년대 초반 아스날의 간판 스트라이커 로 맹활약했던 티에리 앙리 의 트레이드마크 골을 연상 시킬만큼 아름답다며 ‘앙리 의 귀환’이라는 표현까지 쓰 고 있다. 이제 겨우 아스날에 서 1골을 넣었을 뿐인데 팬 들이나 현지 언론의 반응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열광적이 다.
하지만 박주영의 아스날 커리어는 이제 시작이다. 아 스날은 내일(29일) 강호 첼시 와 프리미어리그 원정경기에 이어 다음달 1일 마르세유 (프랑스)와 유럽 챔피언스리 그 조별리그 홈경기 등 중요 한 2연전을 앞두고 있다. 박 주영의 팀 내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이 두 경기를 통해 바로 드러날 것이다. 지 난 경기에 잘했다고 박주영 이 당장 선발로 나서길 기대 하는 것은 욕심이고 비현실 적이다. 박주영의 포지션에는 반 페르시라는 걸출한 선수 가 버티고 있어 그 대신 주 전으로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후반 조커로 투입되길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물론 반 페르시와 함께 투톱 으로 나설 수도 있지만 이것 은 팀의 기본 포메이션을 바 꾸는 것이기에 쉬운 결정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박주영 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사 실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살 리지 못한다면 그에 대한 열 광은 빠르게 온 것만큼 빠르 게 사라질 수 있다. 지난 경 기가 벤치에서 잠자던 그의 아스날 커리어를 점프스타트 로 깨웠다면 다음 2연전은 그가 계속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을지를 판가름할 것이다. 첼시전은 내일(29일) 새벽 4시30분(LA시간)부터 케 이블채널 ESPN2과 인터넷채 널 ESPN3.com으로 중계된 다. 잠을 설치고 새벽부터 일 어나 TV앞에 앉을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김동우/ 부국장 대우·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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