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8,500만달러가 내 가족과 후손까지 챙기는데 부족한 돈이라면 난 참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의 게임’을 하면서 이런 돈을 만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LA 에인절스 에이스 제러드 위버(28)가 지난달 5년간 8,500만달러 재계약에 합의하면서 한 말이다. “적당히 받고 넘어갔다”며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이 많았기에 설명이 필요했던 것.
평균연봉이 1,700만달러인 계약으로 메이저리그 투수 연봉랭킹 8위에 이르는 특급대우다. 하지만 위버는 2년 만 더 기다리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 선수로, 자유계약 시장에 나가 C.C. 사바티아(뉴욕 양키스)와 같은 7년간 1억6,100만달러 수준의 초대형 패키지를 받아낼 일생일대의 기회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Show Me the Money! (돈을 보여 달라)”란 구호로 유명한 프로스포츠의 세상에서 사실 놀라운 일이다. ‘수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고객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날 ESPN.com 등 일부 언론에서 위버-에인절스 재계약 관련 기사에 ‘쇼킹’이란 제목이 달려 나올 정도면 ‘벼랑 끝 전술의 귀재’인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둔 선수가 FA 시장에 나갈 기회를 포기하고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는 경우가 얼마나 드문지 실감할 수 있다.
아시다시피 박찬호도 지난 2002년 LA 다저스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할 때 보라스가 에이전트였고, 2013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는 추신수(29·클리블랜드 인디언스)도 현재 보라스가 에이전트를 맡고 있다.
여하튼 위버는 사상이 뚜렷한 사람이다. 커리어 최고 시즌을 작성 중인 위버의 올해 연봉은 740만달러로 돈은 이래저래 1억달러 이상 벌 페이스다. 따라서 그는 ‘환경’과 ‘시큐리티’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위버는 “보라스가 (FA 포기를)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도 받았고 “그렇지 않다. 내 의견을 확실하게 전한 다음에는 그가 에이전트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고 대답 했다.
우선 위버는 LA 인근 노스리지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항상 가족이 와서 볼 수 있는 애나하임 에인절스테디엄에서 계속 뛰길 원했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가 확실하고 익숙한 구단에 남아있길 선호했다. 랜디 잔슨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적응하지 못한 ‘브롱스 동물원’(Bronx Zoo)으로 불리는 곳으로 갈 계획을 세우느니 신사적인 구단주(아티 모레노)와 실력파 감독(마이크 소샤)이 있는 곳에 남는 게 속 편하다고 판단, ‘트레이드 거부권’까지 받아냈다. 새 팀과 도시에 적응하지 못할 위험부담은 자연적으로 사라졌다.
박찬호가 익숙한 LA에서 한인 커뮤니티의 응원을 엎고 계속 다저스에서 뛰었더라면 그의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박찬호가 한국식당도 찾기 어려운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이 많아 부진하다”는 식의 한국 스포츠 신문 기사를 보고는 북가주에서 직접 운전하고 LA 본사까지 찾아온 두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우리는 아이들도 다 커서 집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우리가 텍사스로 가서 음식도 해주고 뒷바라지를 해주겠다”며 ‘딱한 6,500만달러의 사나이’와 연결해 줄 것을 부탁하신 에피소드였는데… 최소한 박찬호에게 알링턴보다는 LA, 레인저스보다는 다저스가 편안한 환경이었음은 틀림없던 것 같다.
또 위버는 일찌감치 장기계약에 합의하면서 FA로 풀릴 때까지 2년 동안 성적부진 또는 부상에 대한 부담도 덜었는데, 이는 추신수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위버가 마음 편히 뛰게 된 반면 추신수는 이번 시즌 전 소속 구단의 5,000만달러 오퍼를 거부한 뒤 성적부진, 음주운전 파문, 엄지손가락 수술, 옆구리 부상 등 불운의 연속에 시달리며 심리적 부담만 점점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규태 스포츠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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