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불란서 식당에서 존경하는 문학 선배 두 분과 멋진 저녁을
할 기회가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우리는 문학과 인생에 대하여 대화를 주고 받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저녁 대접을 받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추려서 만든 시디(C.D) 한 장을 감사의 의미로 선배님께 드렸다.. 나는 시간이 날 적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시디를 만들어 주위 사람들한테 선물하는 것을 즐긴다.
어느 날 우연히 들었던 “우울한 일요일(Groomy Sunday)” 이란 노래에 빠져 지금도 내가 만드는 시디에는 이 음악이 거의 빠짐 없이 들어간다. 멜로디와 가사는 가슴이 탁 메일 정도로 슬픈 감정을 끌어내지만 나름대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영화 “그루미 선데이”의 주제곡인 이 노래를 듣고 영화를 보았다. 내용은 194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식당에 피아니스트가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식당 주인인 라즐로와 그의 연인인 아름다운 일로나, 그리고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이 세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과 더불어 전쟁의 공포 속에서 밑바닥에 처절하게 깔리는 인간의 존엄성 말살에 항거하는 모습들이 눈물겨웠다.
또한 이 식당에 손님으로 온 독일인 한스 역시 일로나를 보자마자 사랑을 느껴 구애를 하지만 거절을 당한다. 안드라스는 사랑하는 일로나를 위하여 “그루미 선데이”를 작곡하고 이 노래로 인해 식당은 더욱 유명해 진다. 그러나 전쟁 중에 인생의 의미를 상실한 많은 젊은이들이 이 음악을 듣고 자살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의 주제는 자살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에 촛점을 맞추었다고 볼 수 있다. 몇 년 후 한스는 야비한 독일 장교가 되어 식당에 나타난다.
그는 안드라스에게 “그루미 선데이”를 연주하라고 명령하지만 안드라스는 연주하기를 거부한다. 그를 노려보는 한스. 이런 아슬한 상황에서 결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던 일로나가 그를 살리기 위하여 이 노래를 부른다.
어두운 그림자 외로움에 흐느끼고/눈을 감고 당신은 먼저 떠나갔네/하지만 당신은 잠들고 난 기다리네/천사들에게 내 자릴 남겨달라고 전해줘요/그 많은 일요일에 어둠속에 홀로/어둠과 함께 가네/촛불이 타듯 빛나는 /눈동자들/눈물을 거둬요. 내 짐은 가벼워요/한숨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요/안전한 어둠의 땅에서 난 배회해요/우울한 일요일
그러나 노래가 끝나자 안드라스는 한스의 총을 빼어 자살을 한다.
그의 죽음은 라즐로의 독백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그 만의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말 없는 항거가 아니였을까? 마지막까지 존엄성을 가지고 최대한 견디는 것. 도저히 견디지 못할 상황이면 “존엄성을 가진 채로” 차라리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리라.
영화의 여운은 깊게 남았다.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니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시작일 지도 모른다. 밤새도록 창문 밑에서 한 남자와 한 여인의 사랑을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 그 사랑은 붉은 빛일까? 혹은 맑은 수정색일까? 눈물이 고여서 작은 연못이 되고 그 연못 속에 비추이는 구름 색일까? 내 시디에서는 “우울한 일요일” 음악이 흐르고 있다. 우울의 끝, 저 밑바닥까지 가보면 파란 하늘이 보이고 하얀 구름이 흘러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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