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에 들러 오늘의 예약 일정을 확인했다. 병원의 곳곳에서 약속이 있고, 그 중 낯 익은 반가운 이름도 있다. 어떤 할아버지 환자분은 먼 복도에서라도 나를 보면 팔을 치켜 들고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양 반가워 하신다. 마치 파워게임에서 자기편을 얻은 것처럼. 아픈 곳을 일일이 설명하고 싶어도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 하시다가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하신다.
스탠포드 병원에는 한국인 의사들이 여럿 있다. 대부분 한국말이 서투르다. 존댓말이 어려운지 대부분 말이 반말이다. 하지만 간단하게라도 우리말로 환자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유대감이 환자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믿음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할머니 환자분은 담당의사가 한국 분이라 무척 좋아하시다가 우리말이 서툴자 “한국 사람이 우리말을 못하면 어째?” 하시며 대놓고 호통을 치신다. 그래서인지 다음 방문 시 의사는 우리말로 대화를 시도하였다. 대뜸 “할머니 오줌은 잘 싸? 안 아파?” 할머니는 어이가 없어 그만 웃고 만다. 의사는 영문을 몰라 멀꿈히 나를 쳐다본다.
수술을 앞 둔 환자의 경우 외래 방문 시 수술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은 다음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게 된다. 수술 받는 날 마취과 의사와 수술 담당의사는 환자에게 어떤 수술을 하는 지를 다시 설명하고 환자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재차 확인한다.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은 자궁적출을 포함해 다른 시술도 함께 받게 되어 있었는데, 막상 수술을 하러 온 날 자궁적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계셨다. 무척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수술동의서 작성 시 조카를 데리고 방문했다고 한다. 조카가 영어를 잘 못해서도 아니고 병원에서 사용되는 전문의료용어가 낯설어 이런 우를 범하지 않았나 싶다.
영어를 못해서라기 보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료통역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분은 의사로부터 검사결과와 앞으로의 예후에 관해 설명을 듣기는 들었는데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자, 다시 의사와 약속을 잡고 의료통역을 신청하였다. 통역을 통해 정확하게 이해가 되고 나니 마음의 불안이 훨씬 덜하다고 한다.
의료통역은 환자분의 비밀과 권리를 지켜드림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환자분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의료통역은 의료사고를 줄여주기 때문에 비용도 환자 부담이 아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부터 의료통역이 필요할 때 적극 활용하게 되기를 바란다.
(의료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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