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대한민국이 답하지 않거든, 세상이 답하게 하라’의 저자 김은미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다국적 기업 CEO SUITE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그녀가 지난해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LA를 방문했던 시기였다.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 그녀에게서 ‘내 인생이 A4용지 한 장으로 깔끔하게 정리될 줄은 몰랐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본인에겐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한 인생 이야기가 A4용지에 그쳤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자전적 에세이라는 것이 그렇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두 문장으로 끝날 수 있고 책 한권으로 모자랄 수도 있다.
분명 모든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지천명쯤 되면 자서전 한 권을 내도 될 만큼 스토리가 모인다. 물론 요즘 자서전은 유명인들이나 쓰는 거창한 책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 황혼이 되었을 때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글 솜씨가 뛰어나야 하며, 책으로 엮었을 때 책이 두꺼워야 한다는 전제조건도 필요 없다.
자신을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자서전이 돼버렸다. 후세에 남기고자 자비를 들여 자서전을 내기도 하고 출판 기획을 통해 돈을 벌 목적으로 자서전이 나오기도 한다.
돈을 벌 목적이라면 출판사로서는 ‘장사가 될 성싶은’ 인물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잘 팔리는 책’이 되기 위해선 오명이든 악명이든 상관없다. 대표적인 예가 출판계의 화제 신정아 자전 에세이 ‘4001’이다. 굳이 노이즈 마케팅 운운할 필요도 없다.
저자의 출간 간담회 한번으로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분류된 책. ‘박애자본주의’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 등 인문 예술서를 주로 선보였던 출판사는 ‘잘 팔리는 책’ 한 권으로 베스트셀러 출판사가 됐다.
저자가 초판 5만부 판매만으로 7천만원가량의 인세를 벌어들이고 출판사측은 2~3만부를 추가 인쇄할 계획이라며 7억 원의 매출을 예상한다니 ‘잘 팔리는 책’ 수준이 아니라 ‘대박’ 매출 아닌가.
‘재미’가 있어야 돈을 버는 세상이 되어간다. 읽을거리 역시 마찬가지다. 가십거리가 책으로 출판되는 현실, 감동을 주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흥미 위주의 가십거리 모음이 책으로 나오는 요즘이 걱정스럽다.
위인전집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동시대의 인물 전기라야 친근감을 느껴 자연스럽게 ‘열독’한다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부모 서재에 꼽혀있는 자서전이라고 덥석 꺼내 펼쳐든 책이 ‘4001’이라면 그 자녀의 미래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은선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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