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벙어리가 꿀을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났다.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묻자 벙어리 남편은 계속 꿀단지만 손으로 가리켰다.
"....."
아내는 남편이 꿀이 먹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고 꿀물을 타서 주었다.
"....."
꿀을 많이 먹어 배탈이 났는데 또 꿀을 먹으라고 하니 벙어리 남편은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이리하여 ‘꿀 먹은 벙어리’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말을 못하는 경우에 ‘꿀 먹은 벙어리’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지 않고 할 말이 없어서, 답이 없어서,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주저주저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꿀 먹은 벙어리’라는 말을 듣게 되는 수가 종종 있다. 그게 아니라 그저 말없음표로 말을 하고 있는 중인데, 그렇게 오해를 받는다.
순발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말주변과 재치가 없는 나는 가끔 그런 상황을 겪게 된다. 그래서 오해를 사고, 또 그 오해를 풀어줄 매끈한 언변이 없어 며칠 끙끙 앓기도 한다. 그리고는 자포자기하면서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에 매달리게 된다.
지난 추수감사절 아침, 미사참례를 하고 나오다가 주차장에서 한동네 사는 몇 교우들과 명절 잘 지내라는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우리는 남편과 둘이 올드 컨트리 뷔페에 가서 먹을 거예요."
평소에 다복한 가정으로 우리가 모두 선망하는 대 선배 되는 분이 뜻밖에 그렇게 말했다. 내외가 모두 은퇴한 분들이기에 그렇게 식당에서 명절을 보내면 쓸쓸하실 것 같아 무작정 우리집으로 오시라고 청했다.
선배는 아니라고 사양을 하고, 나는 자꾸 청하고 …그러는 사이에 옆에 있던 다른 교우가 말했다.
"우리 네 식구도 가면 안 돼?"
"....."
그때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작정하고 간소하게 차리기로 한 올해 우리 집 추수감사절 저녁상이었다. 이런저런 일로 우리 식구도 한 자리에 다 모이질 못해 터키도 큰 닭이라고 해도 좋을 작은 걸로 준비했고, 반찬도 아들이 좋아하는 몇 가지만으로 장을 보아놓았던 것이다.
그 가벼운 저녁상에 계획에 없던 네 식구를 손님으로 초대할 일이 아득해서 나는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창피한 마음이 앞섰다. 왜 진작 그 가족을 초대할 생각을 못했을까. 미리 계획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장보아 놓은 걸로 양은 충분히 되지 않을까… 정답이 나오질 않았다.
"....."
내가 그렇게 말없음표로 말하고 있는 사이에 모두들 각자의 차에 올라탔고, 그렇게 나는 바보처럼 그 교우를 민망하게 보냈다.
하루 종일, 그분에게 전화를 해서 설명을 해야 하나, 뭐라고 말을 해야 내 마음이 전해질까, 끙끙 앓기만 하다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여태껏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나보다.
이영옥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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