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의 선구자 최병헌 목사 신학사상 연구
외손자 김상모 목사가 설립
■선교회 연혁
탁사최병헌목양선교회(대표 김상모목사)는 2007년 6월10일 뉴저지 대원에서 김상모목사가 사역했던 스테튼아일랜드 만백성교회 교인들과 감리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족감사예배와 세미나를 열고 시작됐다. 이날 세미나에는 김광원박사가 ‘한국 최초 변증신학자 탁사 최병헌목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는 “최병헌목사는 다양한 신학을 접했지만 복음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은 한국의 웨슬리”라고 말했다. 이어 탁사 관련 논문으로 프린스턴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효신목사가 ‘최병헌목사와 조원시선교사와의 관계’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취지와 목적
선교회(201-568-2509)는 최병헌목사의 외손자 되는 김상모목사가 미연합감리교회 정년 은퇴후 미주에서 최병헌목사의 신학사상을 연구하고 목양정신을 기리기 위해 설립했다. 김상모목사는 “1960년대부터 한국에선 토착화신학(Indigenization)이 거론되면서 한국기독교의 기초를 다진 한국교회의 스승 탁사(濯斯) 최병헌목사에 대한 연구와 강좌가 시작돼 심포지움, 세미나 및 탁사기념사업회가 생겼다. 그 후 연구도서, 역서, 논문 및 해외 박사논문 등 탁사연구가 활발해 졌다. 한편 탁사의 고향 충북 제천시는 시 주관으로 하루를 탁사의 날로 정하고 탁사의 생애와 사상 심포지움을 갖고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이에 미주에서도 탁사를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갖고 탁사의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교회 사랑의 정신을 고양하며 말씀과 기도 중심의 영성 성화운동에 힘쓰는 한편 탁사 학술세미나와 애국가 작사 원문 발굴 및 문서선교에 힘쓰고자 선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탁사 최병헌목사는
1858년 1월16일 충북 제천에서 출생(아펜젤러목사와 동년 출생)한 최병헌<사진>목사는 호가 탁사(濯斯)다. 10대부터 한학에 통달했고 사서오경 등 유학사상을 연구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관건의 횡포와 과거시험의 부정을 체험하고 국헌의 부패에 통분하고 시회개혁을 결심했다. 1885년 4월5일 아펜젤라와 언더우드선교사가 내한했다. 1888년 아펜젤라와 존스와 면담하고 한문성경을 입수했고 존스의 어학선생이 되었다. 1889년 배재학당의 한학교사로 부임했고 신약성경을 한국어로 번역 시작했다. 1897년 2월2일 한국최초의 교회신문인 ‘조선그리스도인 회보’를 창간했다. 1898년 정동 제일감리교회에서 아펜젤러 목사를 돕는 부목사 역할을 1902년까지 했다. 1900년 신학월보를 창간했고 황성신문 논설주간이 되었다. 1902년 5월18일 감리교 평양선교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고 아펜젤라목사(6월11일순직)의 후임으로 한인으로는 최초의 서울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가 되어 12년 동안 사역했다. 1907년 협성신학교(현 서울감신대)가 개교했다.
1909-1910년 신학월보에 동양종교학을 연재했다. 1912년 ‘성산명경(聖山明鏡)’ 비교종교론과 조선야소교서회를 발간했다. 1914-1916년 한국인 최초의 인천지방(당시 78개교회) 감리사로 임명받아 한국교회 최초의 행정가가 되었다. 1914년 4월2일 조선기독청년회(YMCA)를 창립하고 3인대표(최병헌, 이상재, 오기선)에 피선됐다. YMCA 종교위원장 및 삼년대회(三年大會) 조직에
대회장으로 피선됐다. 1917-1922년 한국인 최초의 서울지방 감리사가 되었다. 1922년 목회직에서 정년 은퇴(65세)했다. 1927년 5월13일 별세했다.
■김상모목사는
김진태(작고)목사(감신3회졸)와 최매리(최병헌목사의 3남매 중 외동딸·8세에 일본유학·히로시마여학교·대학교졸·감리교여자신학교2회졸업)사모의 3남매 중 막내로 서울에서 태어난 김상모(76)목사는 연세대신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1960년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해병대 간부후보(26기)로 임관하여 해병(해군)군목으로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해군 백구부대 군종참모를 역임했고 소령으로 예편했다. 1962년 11월10일 서울에서 결혼했고 1972년 8월 유학차 도미했다.
도미 후 콜게이트 로체스터신학대학원(Th.M.), 두루신학대학원(D.Min.)을 졸업했고 로체스터한인연합감리교회를 창립(1972-1979)하여 목회했다. 이후 뉴욕코멕감리교회(1979-1981), 뉴욕성서교회(1981-1994), 뉴욕만백성교회(1994-2004)를 담임했다. 은퇴 후 미연합감리교회 동북부선교부감리사를 역임했다. 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회장(1986), 뉴욕목사회회장(1999), 미주해외기독문학회 초대회장(1995), 미연합감리교 한인교회전국연합회회장(2002), 한인세계선교회(KWMC)대표회장(2000), 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 회장단의장(2007),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뉴욕기념사업회 회장(2005-2010)등을 역임했고 한국창조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서울특별시 시장장(김현옥)을 비롯해 월남참전유공자상, 연세인상, 뉴욕주의회 사회봉사상, 뉴욕시미교회협의회 목회자상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병든 믿음을 위하여> 등 여러 권이 있다. 가족으로 부인 이엘리사 사모와의 사이에 장남 김덕수(며느리 민창준·손녀 캔드라·손자 갈렙)변호사, 딸 김정하(RN·NP.사위 스티브 양·내과의사·손자 대니얼 및 앤드류), 차남 김지수(며느리 김실비아·손자 아이삭)건축회사 부사장을 두고 있다. 김상모목사의 누나가 김효모(82·감리교은퇴)목사다. 선교회주소: 40 Anderson Ave., Englewood Cliffs, NJ 07632.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최병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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