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모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책 출판기념회에 갔다. 그는 이미 세계 각국의 역사, 문화, 현지 사람들을 상세히 소개하는 논문과 책을 많이 출판했다. 그 출판물들의 내용들이 알차 어떤 책은 거의 10번을 재출판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새로 출판된 책에 사용된 사진들이 상설 전시된다고도 했다.
그는 사진 수집을 도와준 사람들을 소개하고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그 사진들이 얼마나 인상 깊은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100여대 오토바이가 빨간 신호등 밑에 줄지어 서 있는 베트남의 출근시간, 약 4미터 길이 통나무를 자전거로 운반하는 정경의 중국 거리, 털 뽑힌 닭 수십 마리가 다리를 공중으로 뻗은 채 쟁반 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중국시장 등이었다.
그의 책들은 그런 사진들을 보이면서 현지 문화를 밀도 있게 관찰하고, 그 문화와 미국 문화와의 차이를 깊이 있게 설명해 준다. 나도 그의 책을 즐겨 읽었었다. 그래서 그가 이런 신기한 장면들이 실제로 있는 게 믿어지느냐는 듯 상당히 흥분하는 게 재미있기도 했고 당연해도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 사진에 대한 그의 직선적 반응이 좀 이상하기도 했다. 세계 곳곳 안 가 본 곳이 없을 텐데 아직도 남의 문화에 그런 감흥을 보이는 그의 풍부하고 활기찬 감정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 흥분으로 인해 그의 책들이 깊이 있을 수밖에 없나 보다 싶었다.
약 100명이 참석했는데 거의가 미국인이었다. 사실 나로선 중국에 직접 가서 봤거나 한국에서도 흔히 보는 장면들이라 사진 속의 현지사람들처럼 무덤덤했다. 하지만 많은 참석자들은 미국에선 도저히 상상도 못할 그 광경들을 보면서 그처럼 흥분 속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자는 각 나라 문화 연구를 위해 이민자들을 많이 만나 현지 자료를 수집한다. 물론 그들은 사진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저자는 여러 기관에서 연구비를 많이 받아 전 세계 현장 곳곳에 자료수집 차 연구조교들을 보낸다. 이번 책의 사진 제공자들과 얘기해 보니 그들은 대개 그런 연구조교들이었다. 사진을 목적으로 각 나라들을 방문했던 그들은 현지인들과는 가깝게 접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며 사진만 찍다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방문국의 음식, 생활 등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관광객으로 가서, 관광객 음식을 먹고, 관광객으로 다녔다 온 사진사들이었다. 그러니까 일반 미국인들의 눈으로 봤을 때 인상 깊은 것을 사진 찍어온 것이었다.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미국인이 읽을 미국 사회학 책에 쓰이는 사진들이니 어쩌면 가장 적합한 사진일 것도 같았다.
출판기념회가 끝날 무렵 저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화려했을 그의 여행 경력이 부럽고 궁금하여 어느 나라들을 방문했었는지 물었다. 참으로 기막힌 답을 받았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비행기 공포증이 있어서 외국은커녕 미국 내에서도 꼼짝하지 않았다 했다. 책과 연구 논문을 쓰느라 바빠 친구도 잘 못 만나며, 주로 자료 제공자와 연구조교를 만나고 인터넷 속 여행을 하면서 몸은 연구실과 집만을 오간다 했다.
한 번도 미국을 떠나 본 적이 없는 그가, 자기 사는 도시에서도 잘 벗어나지 않는 그가, 그렇게 밀도 있게 남의 문화를 관찰하는 직관력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지구 여러 곳을 여행하며 제법 이런저런 경험을 가진 나도 가질 수 없는 문화적 직관력. 그의 재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인터넷의 힘에도 감탄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직관력이 과연 진짜일까? 진짜 같은 가짜일까?
집으로 가는 내내 뭔가가 조금씩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김빠지는 느낌? 비싼 일류 프랑스 식당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 나오다가 우연하게 그 날 주방장이 출근 안 했다는 메모를 본 느낌?
김보경
대학 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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