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88올림픽을 친구들과 함께 대학 기숙사에서 시청했다.
당시 올림픽을 중계하던 NBC에서 한국의 음식을 소개하는 코너가 나왔는데 식당 현장에 나와 있던 아나운서가 잡채를 입에 넣고는 입맛에 맞지 않는지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당황해 하자 스튜디오에 있던 앵커가 웃으면서 “한국 음식은 맛을 배우기 쉽지 않다”고 아나운서와 농담을 나누는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당시, 대학을 갓 입학한 기자는 주변의 백인 친구들과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창피하기도 하고 울화도 치미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옆에 있던 친구가 한국 음식이 저렇게 맛이 없느냐는 질문에 화가 나서 그 친구들을 데리고 한인타운에 나와 갈비를 사줬다. 코리안 바비큐를 게 눈 감추듯 집어 먹던 이 친구, 김치를 한 조각을 입에 넣더니 근방 뱉어버린다.
이렇게 미국에서 천대를 받던 한국 음식이 이제는 젊은 층 사이에서 꼭 맛봐야 할 ‘힙’(hip) 한 음식으로 부상했다. 타운 내 유명 고기식당은 70%가 외국인 고객으로 이뤄졌다. 주류사회에서 무제한 바비큐 코스는 LA에서 꼭 경험해야 할 관광코스 중 하나로 부상했으며 멕시코 음식과 한식을 퓨전한 불고기 타코를 서브하는 푸드 트럭이 전국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타운뿐만 아니라 웨스트LA 등 외곽지역에 문을 열고 있는 순두부 레스토랑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며 할리웃의 고급 호텔 바에서는 돌솥 비빔밥을 특별 메뉴로 내놓고 있다. 멕시코나 알래스카로 떠나는 크루즈나 라스베가스 호텔 부페에서 김치는 스탠더드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소주와 막걸리까지 덩달아 한식 세계화 물결을 타고 주류사회 곳곳으로 진출하고 있다.
60년대 일본 이민자들이 날 생선을 먹는 것을 보고 일부 미국인들은 “야만인”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일식당은 중식과 이탈리아식 그리고 멕시칸 식당에 이어 미국에서 가장 문을 많이 열고 있는 외국음식 식당 중 하나로 성장했다.
요즘 한식 세계화 운동에 본국 정부는 물론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각종 한식 알리기 이벤트가 열리고 현재 미주를 방문 중인 ‘한국 불교 세계화를 위한 방미 대표단’은 한국 전통사찰 음식 시연회까지 개최하는 등 한식 세계화를 위한 수많은 행사가 미국에서 열리고 있다.
한식은 건강과 웰빙을 지향하는 음식으로 세계 식품 소비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만큼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미국에서 일식당처럼 샤핑몰마다 한국 음식점이 들어설 날도 곧 올 것이라는 것을 믿어 마지않는다.
백두현 /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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