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
“착합니다. 그 앤 착해요.”
“착하기만 하면 못 쓴단다.”
최인호 작가의 수필집 ‘인연’ 에 실린 글에서 작가와 그의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이다. 결혼 허락을 받기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집에 데려오고 난 직후의 일이다.
내가 이 대화에서 멈춘 까닭은 나와 딸아이가 3년 전에 나눈 대화를 꼭 닮아서였다. 좋아하는 청년을 집에 데려오겠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내 질문에 딸이 그렇게 말했었다.
“착해.”
나는 일단 안도했다. 마음이 곱고, 어질고, 선하면 된 것 아닌가. 그래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한테 기회만 있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착해야해’라고. 그러나 나도 최인호 작가의 어머니와 같은 심정이었다. ‘능력도 있어야하는데…’ 착한 것만으로 살아지지 않는 세상이 아닌가.
우리는 얼마나 흔히 듣고 말하는가. ‘착해빠져서는…’ ‘착하긴 한데…’ ‘착하면 뭐해…’
그래도 나는 착한 사람이 좋다. 무조건 좋다. 착하다는 단어 자체가 참 좋다. 글을 읽다가 ‘착한‘ 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오래오래 머물게 된다. 참 반갑고 좋다.
언젠가는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할 책을 찾아 교보문고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내 눈에 확 들어온 요리책 소개 글에서 착한 야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냉장고 속 착한 재료와 마법의 밥숟가락 계량법 하나면 요리 끝!”이라는 소개 글만 보고 나는 그 요리책이 마음에 쏙 들어 그 책을 방송에서 소개했었다.
그 후로는 나의 게으름으로 새들새들 말라비틀어진 오이, 싹이 나기 시작한 감자, 물컹하게 만져지는 아보카도 등을 보면 내가 한심하고 짜증이 나기보다는 ‘착한’ 야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착한‘ 기업도 만났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윤리적, 법적 기대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부응하려는 노력을 하는 ‘착한’ 기업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니 얼마나 마음 놓이는가.
그리고 최근에는 ‘착한 시‘를 만났다! 정일근 시인의 ‘착한 시‘를 늘 곁에 두고 읽으면 우리 모두 착해지지 않을 수 없으리라.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숭어 새끼는 동어,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그 작고 어린 새끼들이 시인의 이름 보다 더 빛나는 시인의 이름을 달고 있다. 그 어린 시인들이 시냇물이면 시냇물을 바다면 바다를 원고지 삼아 태어나면서부터 꼼지락 꼼지락 시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생명들이 다 시다. 참 착한 시다.”
나도 이 세상을 원고지 삼아 꼼지락 꼼지락 시가 쓰고 싶어진다. 참 착한 시를.
이영옥
수필가· 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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