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5일 토요일 아침, 북가주 농구 한마당 잔치 행사장을 향하던 중 커피생각에 알라메다 초입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서려는 순간 홈리스 한명이 구걸을 한다. 씻지 않아 칙칙하게 엉겨 붙은 머리는 길게 헝클어져 있었고 맨발에 검은 얼굴까지 너무 지저분해 보였다. 측은한 마음에 1달러를 건네자 힐끔 올려다보며 한국어로 “땡큐 감사 합니다” 를 말했다. 한국어? 깜짝 놀라 얼굴을 좀 더 가까이 살펴보니 아시안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인이십니까?” 하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LA나 라스베가스에 있다고 소문으로만 듣던 한인 홈리스를 만난 것이다. 신수지(53세, 가명)씨. 집이 없는 그녀는 근처 다른 건물 처마 밑에서 자고 편의점 일대에서 구걸을 한다고 했다. “왜 이런생활을 하느냐”고 묻자 “영어도 서툴고 나이도 많아 일을 하고싶어도 써주지 않는다“며 손을 저었다. 서울에 있는 고아원 “애화원”출신이라고 밝힌 그녀는 19세 때 미국에온 영주권자라고 했다. 30년 넘게 미국생활을 한 그녀가 최후로 홈리스생활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하는 태도와 답변은 그녀의 사고력과 지능에는 문제가 없음을 짐작케 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하며 나름의 포즈까지 취해준다. 아침 식사 값을 더 쥐어주고 떠나려하니 그녀는 “운전 조심하라”고 당부까지 했다. 그날이후 그녀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가까운 한인봉사회로 한인 홈리스를 구제하는 프로그램을 물으니 북가주 지역 한인홈리스에 대한 통계자료가 없어 프로그램도 있지 않다고 하며 굿 사마리탄 등 홈리스를 위한 미국 사회 정보들을 알려줬다. 한편 소식을 들은 알바니의 어느 목사님께서 곧 그녀를 찾아보겠다고 알려왔다. 흔히 미주동포220만 북가주 동포 15만명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많다보면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경제적인 환경이 하루 벌어 먹고살 수 없는 곳이 북가주이기 때문일까? 한인 홈리스가 없던 북가주 지역에 여성 한인 홈리스 출현이야말로 어렵고 힘든 시대를 지내며 변해가는 우리의 어둡고 씁쓸한 뒷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규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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