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은 마침 6.2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이어서 거리에는 온통 선거 홍보물이 가득했고 유세에 나선 후보들의 선거 방송도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이어져 온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였다. 학교 동창들과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도 지방선거가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한국에 살고 있는 30대 중반 나이의 친구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눈 이야기는 이랬다. ‘한나당의 우세가 어려울 것 같다’ ‘검찰에 불려갔던 민주당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의 상승세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경합 수준이다’ ‘인천 송도를 유령도시로 만든 안상수 현 시장은 재선이 어려울 것이다’ 등이었다.
LA에 돌아온 뒤 새벽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확인한 선거 결과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한국에서 동창들로부터 들었던 판세 예상의 거의 대부분이 들어맞은 것 아닌가. 한나라당의 완패, 한명숙 후보의 선전, 인천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송영길 후보의 압승 등, 마치 족집게 도사를 만나고 온 기분까지 들었다.
이 동창들은 불과 2~3년까지만 해도 정치나 선거에 별로 관심이 없던 친구들이었는데, 이처럼 선거 결과를 마치 미리 내다보듯 예측하는 것을 보니 그만큼 현 한국 정부와 여당에 대한 민심의 흐름이 만만치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인식은 기자의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사실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는 천안함 사태가 열띤 화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실제로는 ‘무관심’에 가까웠다.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 발표는 정부와 여당이 지방선거용 여론몰이를 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북한이 연일 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충돌이나 전쟁 위기에 대한 우려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젊은 계층에서는 특히 천안함 사태에 따른 긴장고조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있으며 북한을 실재적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외신들의 전언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같은 분위기를 보면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이 마치 대지진에 대한 인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 규모 7.5 이상의 치명적인 ‘빅원’이 조만간 닥칠 수도 있다는 예측과 경고가 나오고 있지만 이를 설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에 대비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많은 한인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한반도에 도사리고 있는 충돌 위기와 캘리포니아의 빅원, 둘 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위험 요소임에 분명하지만, 그 속에 살면서도 너무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문제라는 생각이다.
김진호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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