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칸 영화제를 다시 찾았다. 설렘보다 망설임이 컸던 여행이었다. 영화제 개막 전 폭풍우가 칸 해변을 삼켰고 아이슬란드의 화산재로 인해 유럽행 항공기 운항이 차질을 빚어서다. 아니나 다를까 항공 일정 지연으로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 5시간을 배회한 후 니스 공항에 도착했고, 칸으로 가는 택시 속에서 빗방울을 마주하면서 날씨마저 따라주지 않는다고 후회했다.
쓸데없는 기우였다. 영화제 기간 칸의 중심가인 라 크로아셋은 눈부신 태양 아래 영화제 인파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방문객이 30%는 줄었다는 공항택시기사의 푸념이 믿기지 않았고, 영화제에 함께 열리는 칸 필름 마켓도 예년에 비해 거래가 활발했다.
무엇보다도 칸 영화제가 한국 영화를, 아니 ‘한국’을 편애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한국인의 긍지를 팍팍 심어주는 기분 좋은 소리다. 칸 마켓 부스마다 보이는 ‘삼성’ 모니터들이 그랬고,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출연한 배우 윤정희씨가 레드카펫에서 선보인 단아한 한복에 보내는 찬사가 그랬다. 크리스찬 디올의 헤어 협찬도 마다하고 쪽머리를 손수 매만지고 남편 백건우씨가 골라준 푸른색 저고리에 연분홍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채 유창한 프랑스어로 소통하는 여배우로 인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칸 유일의 한국 식당을 찾아갔을 때도 그랬다. 혹시 없어졌을까 염려도 있었다. 2년 전 기억으로는 코리안 바비큐라고 해봐야 불고기와 돼지 불고기, 스시 메뉴가 전부였고 맛도 그저 그런데 양도 정말 적은 한식당이었다. 하지만, 식당 앞에 당도했을 때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테이블 10개가 모자라 손님들이 양 옆집 패티오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기쁜 마음에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단단한 체구의 두 남자가 다가와 식당 안 촬영은 금지라고 했다. 무슨 소리냐고 되묻기도 전 불고기를 맛나게 먹고 있는 할리웃 스타 테렌스 하워드가 눈에 띄었고, 그의 주변으로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미국인들이 불고기를 먹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더 이상 한국 영화사 직원들로 테이블이 채워지는 한식당이 아니었다.
한국 영화가 칸 영화제 진출이 아니라 수상을 기대할 만큼 위상이 높아지는 동안 이 아담한 한국 식당도 자리를 잡았나보다. 코리안 바비큐가 인기를 누린 때문이지만, 한국 영화인들의 후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한식의 세계화란 바로 여기서 출발하지 않나 싶다. 거창한 마케팅도 필요하지만 아담한 한식당에서 훈훈한 접대로 코리안 바비큐를 맛보게 하는 것. 윤정희씨처럼 한복을 입고 전 세계 언론을 마주하는 것,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한국 문화의 세계화 전략이다.
하은선 / H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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