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졌다. 기자의 욕심을 살려 보도해야 하는지, 피해자와 수사 당국의 입장을 고려해 보도를 미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문서위조 및 절도 등의 혐의로 수배된 한인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공문서 자료를 조사해 보니 정말로 그 한인에게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미국에서는 각종 재판 기록이 공개되기 때문에 기자들이 공문서에서 찾은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수사 기관의 진술서와 주변 취재를 통해 어렵지 않게 피해자를 찾았다. 피해자는 “수사관이 비밀을 지키라고 해서 언론에 제보를 하지 않았었다”며 ‘눈뜨고 당한’ 사기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해 주었다. “기자가 물으니 말하는 건데…”라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기상천외한 사기사건 스토리를 들으며 독자들에게도 꼭 알리고 싶어 귀가 쫑긋해지고 손이 간질거렸다. 수사 담당자와 담당 검사에게도 메시지를 남겨 취재를 요청했다. 취재의 7할은 끝난 셈이었다.
피해자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추가 정보를 기대했던 기자에게 피해자는 “용의자 검거가 임박했다. 용의자가 검거되면 가장 먼저 알려줄 테니 그때까지 절대로 신문에 기사가 나가면 안 된다고 수사관이 말했다”며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수사 담당자는 역시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취재를 거부했다.
‘보도 딜레마’가 시작됐다. 이미 공문서를 통해 범죄가 공개됐고 정당하게 취재를 했으니 기사를 써도 무방하지 않은가? 보도된 기사를 보고 용의자가 도주한다면 기자의 책임인가? 보도와 용의자 검거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 용의자 검거를 기다리는 동안 타 언론사가 알아내 보도한다면 낙종을 하지 않을까?
공문서 내용을 근거로 보도한다면 법에 어긋날 것은 없지만 최소한의 보도 윤리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취재원이 되어준 피해자가 용의자가 체포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요구했는데 이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신문의 보도 때문에 수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그 역시 올바른 보도라고 할 수 없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받는 특권이다. 하지만 언론의 특권 뒤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기자가 언론의 특권을 이용해 취재를 했다면 보도의 단계에서는 사회적 책임도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윤리와 책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기자는 딜레마에 빠져도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도덕성 훈련이 필요한 직업이다. 그래서 나의 딜레마는 용의자가 검거될 때까지 계속되는 현재형이다.
김연신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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