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샌타애나 연방지법 10-A법정. 2007년 12월31일 라하브라 시내 한 샤핑몰에서 경관 2명으로부터 10여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마이클 조(당시 25)씨의 유가족이 경찰 등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재판이 열렸다.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재판의 결과는 가족들의 기대와는 달리 매우 실망스러웠다. 배심원 8명의 의견이 5대3으로 갈려 판사가 재판 무효화를 선언해 버린 것. 이에 따라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재심이 열리게 됐다.
재판과정을 지켜보며 아쉬웠던 점은 사건발생 직후 “꽃다운 나이의 한인 젊은이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희생됐다”고 분노하던 한인사회가 이번 민사재판에 대해서 너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씨 피격사건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 남가주 한인사회는 그가 ‘부당한 죽음’을 당했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었다. 사건발생 당시 UCLA에 재학 중이던 기자 또한 캠퍼스에서 열린 추모집회에 참석해 경관들의 행동에 분노하며 울분을 터뜨렸다.
한인들은 베트남 커뮤니티 등 타아시안 커뮤니티와도 연대해 경관들의 부당한 행동을 규탄하는 등 아시안 커뮤니티 전체가 단합해 ‘정의구현’을 위해 한 목소리를 냈다. 한 주류언론은 ‘마이클 조의 죽음-41초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까지 제작, 방영해 한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뜨거웠던 관심은 이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어버렸다. 민사재판이 열린 법정에는 가족을 제외하곤 한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광경을 보며 ‘냄비근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사재판이 담당판사의 재판 무효화 선언으로 막을 내린 후 법정을 나서는 조씨의 아버지 조성만씨의 뒷모습은 매우 처량해 보였다.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하는 이도 없고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사건발생 초기 분노하며 관계당국의 공정한 조사를 촉구했던 한 한인단체 관계자는 재판에 대해 한인사회가 무관심했다는 지적을 받자 “몇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민사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챙길 수는 없다”며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냐”라고 말해 기자를 당황스럽게 했다.
이번 민사재판을 취재하면서 한인들이 이제는 ‘냄비근성’을 버리고 오랫동안 끓고 서서히 식는 ‘뚝배기근성’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한인들이 뚝배기근성으로 똘똘 뭉쳐 대응했더라면 이번 민사소송에서 혹시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조만간 열리게 될 재심에서는 한인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양승진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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