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저녁 무렵 뱀이 들어 왔다 베란다에
자살테러범처럼 독(毒)을 품고 잠입한 독사
놀란 새들은
새장을 떠메고 허공 높이 화르르 날아오르고
함께 날아올랐으나 이내 추락했던 나는
엉겁결에 움켜잡은 삽자루를
미친 듯이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한껏
(중략)
무장해제하고 축 늘어져 이는
녀석을 보고서야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도대체
여자나이 몇 살이면 뱀을
때려잡을 수 있단 말인가?
뱀 한 마리
잡는 사이에 나는 부쩍 늙어버린 여자였다
한혜영 (1954 - )
아줌마는 베란다로 잘못 찾아들어온 뱀을 삽으로 쳐서 잡는다. 이때 화자는 이미 청순무구한 아가씨가 아닌 ‘부쩍 늙어버린 여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으며 당혹해 하고 씁쓸해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줌마’가 되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삶의 질곡을 헤쳐 나갈 지혜와 용기를 지닌 나이에 들어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 생활이 녹아있는 시를 쓸 수 있게 되고, 진정 좋은 시가 어떤 시인지 단단한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아줌마’ 한혜영 시인은 <이 아침의 시>를 맡아 오랫동안 뱀을 잡아온 바로 그 필자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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