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취재처는 공적인 관계가 기본이지만 취재처와 관련된 기사와 행사는 절친한 친구의 일처럼 잘 챙겨주고 싶다. 특히 취재처인 단체가 열심히 준비한 행사를 챙겨주지 못할 때는 친구의 정성어린 초대에 응하지 못한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난 5일 열린 가주한의사협회 송년모임이 그런 경우다.
한의사협회는 올해 송년회의 의미를 살리자는 취지로 몇 달 전부터 ‘주류 정치인 초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주정부의 한의학 정책에 한의사들의 위상과 미래가 달려있는 만큼 회원들끼리 즐기는 송년회보다는 전문인 단체로서 한의사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정치인을 초대해업계의 목소리를 전달하자는 것이 협회의 의도였다.
내년에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한의학계 지원을 공표한 후보에게 협회의 지지를 보내주는 ‘정치적 상부상조’를 추구한 것이다. 한인 전문인 단체로서 정치 세력화를 이해하고 실천한 신선한 시도였다.
한의사협회는 면밀한 준비 끝에 한의학을 지지해온 제리 브라운 민주당 주지사 후보를 송년회에 초청했다. 처음 방문하는 소수계 커뮤니티로 브라운 후보가 한인타운을 결정했다는 의미는 크다. 한의사협회는 한의사뿐만 아니라 한인사회 전체의 요구를 후보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 여러 한인 단체장들을 모임에 초대했다. 초대장을 받은 단체장 모두가 참석을 약속했지만 당일 송년회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자도 취재 요청을 받았지만 주말 취재 일정이 겹쳐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한의사들만을 위해 브라운 후보를 초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손님을 초대해 놓고 주인 식구들이 자리를 비운 형국이었다”며 “브라운 후보에 대한 지지여부에 상관없이 한인 단체장들이 참석해 한인커뮤니티의 목소리를 유력 후보에게 전달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브라운 후보는 베벌리힐스의 기금모금 만찬 스케줄을 늦추면서까지 한의사협회 송년회에 머물며 한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1992년 LA폭동 이후 한인 커뮤니티는 ‘정치력 신장’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한인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후보에게는 기부금 등 한인사회의 지지가 낭비돼서는 안 된다. 한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후보를 선별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현명한 정치적 안목이 한인사회에도 필요하다. 한의사협회의 송년회를 취재하지 못한 것은 취재처의 정치력을 기자의 취재력이 따라가지 못한 경우라는 자성이 지워지지 않는다.
김연신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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